아홉 살 소녀 아야는 이라크에서 경찰이었던 아버지와 교장이었던 어머니, 그리고 오빠 둘과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기독교인 친구를 도우면서 아야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아야의 가족은 협박에 시달렸다.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집에 총알이 박힌 날도 있었다. 총알자국은 갈수록 늘었다.
아야의 가족은 탈출을 계획했다. 아버지가 먼저 호주로 밀입국했다. 어머니와 3남매는 한국을 경유해 뒤따를 계획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신분위조 사실을 들켜 호주로 건너가지 못하고 발이 묶였다. 그렇게 어머니와 3남매는 한국에서 난민이 됐다. 3남매는 벌써 5년 넘게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아야는 휴대전화 영상통화 화면 너머에 있는 아버지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사연을 접한 KBS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아야의 가족에게 찾아갔다. 아야와 오빠들은 제작진을 통해 호주에 있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다. 아버지는 이 편지를 움켜쥐고 눈물을 쏟았다. 가족을 만날 수 없는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오열했다. KBS가 지난 27일 방송한 다큐멘터리 ‘낯선 땅 새로운 희망’은 각 조국에서 종교, 민족, 정치적 이유로 박해를 당하고 탈출한 난민들의 이야기였다.
가족을 만날 수 없는 슬픔은 국적을 가리지 않았다. 시청자들은 아이들의 편지를 부여잡고 우는 아야의 아버지를 따라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일부 시청자들은 이 장면에서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다. 아이들이 크레파스로 끄적끄적 그림을 그리고, 삐뚤삐뚤한 한글로 적은 편지 중 한 장에 ‘앙 기모띠’라고 적혀 있었다.
이 장면을 발견한 시청자들은 뜬금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앙 기모띠’는 유명 인터넷방송 BJ 철구의 유행어다. 지상파와 케이블채널만큼이나 인터넷방송 시청자가 많은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표현이다.
일가족이 생이별한 슬픔과 난민 신세의 아픔을 겪지만, 오랜 한국 체류로 우리나라의 평범한 초등학생들과 다르지 않게 ‘현지화’ 돼 장난기를 발휘한 아야와 오빠들의 이 표현 하나가 되레 시청자들에게 안도감을 줬다.
이 장면은 30일 인터넷 유머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퍼졌다. 네티즌들은 “아야의 부모님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3남매는 한국에서 현지화 된 것 같다. 이미 우리 국민이다” “3남매가 한국 어린이들과 친구로 지낸다는 증거다. 씩씩하게 자라는 것처럼 보여 한편으로는 안심이 된다” “세계 어느 나라 어린이도 한국에 온 이상 인터넷방송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