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남자가 로또 복권만 남긴 채 고독하게 숨진 사연.

입력 2016-12-30 01:18 수정 2016-12-30 01:32
‘로또 복권도 지켜주지 못한 50대 남자의 고독사’

지난 27일 광주광역시의 한 단독주택에서 복권 3000여장과 함께 발견된 50대 남성의 백골화 시신이 수개월동안 방치된 것으로 밝혀졌다.

지자체와 경찰은 ‘고독사’가 발생할 때마다 각종 대책을 백방으로 추진한다고 떠들썩하게 발표했지만 이번에도 실종신고를 묵살하는 등 미온적 대처가 드러나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혼자 살면서 수년간 지병을 앓다가 숨진 미스테리 남성은 사후에도 외로운 신세를 떨치지 못했다.

광주 북부경찰서와 북구는 공공근로로 생계를 꾸리다가 복권 더미를 남긴 채 숨진 오치동 신모(54)씨의 사망·발견 경위에 대한 자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29일 밝혔다.

이웃주민과 신씨가 전세를 들어 살던 집 주인이 “신씨의 모습이 몇 개월째 보이지 않는다”며 실종신고를 했지만 이를 묵살한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만큼 부패된 신씨의 시신이 오치동 단독주택 2층에서 발견된 것은 지난 27일 오후 9시 15분쯤.

경찰은 “동생이 지난 4월 이후 연락되지 않는다”는 친형의 신고를 받고서야 현장에 출동했다. 문을 강제로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 경찰이 마주친 것은 백골이나 다름없는 A씨의 시신이었다.

동생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형이 비로소 쓸쓸히 숨진 동생의 주검을 찾게 된 순간이었다.

비스듬히 누운 채 발견된 A씨의 시신은 오랫동안 방치돼 백골화가 진행된 상태로 숨진 지 수개월인 된 것으로 추정됐다.

청소한 지 한참된 것으로 보이는 집안 내부도 사람의 출입이 장기간 없었던 듯 사방에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경찰은 친형이 지난 4월 마지막으로 전화 통화를 했다고 진술한 점으로 미뤄 최장 8개월간 방치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유서는 없었지만 안방 컴퓨터 옆 봉투에는 최근 3년 사이에 구매한 로또 복권이 3000여장 담겨 있어 사인을 둘러싼 의혹이 증폭됐다.

로또 복권 봉투 인근에는 신씨가 당첨 가능성을 저울질 한 것으로 짐작되는 신씨의 자필메모도 함께 놓여 있었다.

문제는 신씨의 이웃 주민이 지난 4월부터 수차례 경찰과 지자체에 잇따라 실종 신고를 했다는 것.

이웃주민들은 “불이 계속 켜져 있는 게 이상하다”며 신고를 했지만 자치구와 경찰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신고 주민은 112 전화신고는 물론 지구대를 찾아가거나 경찰서 민원실, 여성청소년계에도 접수를 타진하는 등 3차례에 걸쳐 신씨의 실종사실을 신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경찰은 “가족이 아니면 실종신고 접수가 어렵고 집 주인이라도 무조건 집에 들어간다면 가택침입죄에 해당된다”며 신고접수를 거부하는 등 소극적 대응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웃주민들은 열쇠수리공이라도 불러서 안으로 들어가보자고 했지만 경찰은 이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경찰은 이에 따라 지구대와 여성청소년계의 실종신고 처리 과정이 적절했는지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변사 의혹이 분명한데도 수색을 하지 않았다면 부실 대응으로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정확한 경위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뿐 아니라 오치동주민센터도 신씨의 실종신고를 한귀로 듣고 다른 한쪽귀로 흘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해당 주민센터 측은 주민 신고에 따라 신씨와 휴대전화 통화를 시도했으나 잘못된 번호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오자 아무런 추가 조치에 나서지 않았다.

011로 시작되는 신씨의 10여년전 휴대전화 번호에 연결될 리가 만무했지만 주민센터 측은 더 이상 손을 쓰지 않았다.

지난 10월부터는 신씨의 차상위계층 수급비까지 지원이 중단됐지만 주민센터 측은 이 같은 사실조차 알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또다시 민낯을 드러냈다”며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힘들게 살다가 죽음까지 고독하게 맞이한 신씨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