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목사는 자기 집 드나들 듯 좁은 골목을 익숙하게 돌아다녔다. 그가 도착한 곳엔 두 평 남짓한 방이 있는 ‘쪽집’이었다. 백발의 노인이 누워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목 수술 도중 발생한 의료사고로 24년째 몸을 일으키지 못하게 된 윤영분(77·지체장애 1급)씨였다.
“할머니 저 누군지 아시겠어요. 지난번에 와서 기도해드렸는데.” 반갑게 건넨 호 목사의 인사에 예상 밖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몰라! 내 나이 칠십 일곱인데 할머니는 무슨. 나 아줌마야!”
호 목사는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윤씨 손을 붙잡았다. “아이고 제가 잘못했네요. 칠십 일곱이면 청춘이죠 뭐. 그나저나 우리 아주머니 얼굴도 고우셔, 피부도 팽팽하시고. 우리 어머니 칠십 일곱일 땐 주름살이 엄청 많았었거든요. 여든 둘에 돌아가셨는데 요즘 들어 참 보고 싶네.” 호 목사의 너스레에 윤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소녀 같은 미소를 지으며 호 목사 손을 꼭 잡았다.
호 목사는 본명보다 별명이 더 유명한 사람이다. 홀몸 노인들을 위한 우유배달 사역을 14년째 이어오며 얻은 이름이 ‘우유 목사.’ 어려운 이웃들을 볼 때마다 눈시울을 붉힌다고 해서 ‘울보 목사’란 별명도 있다. 그의 이름은 몰라도 별명 모르는 사람은 이 동네엔 드물다. 이런 별명에 대해서도 호 목사는 “과분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나님의 지상명령엔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교회가 첫 번째 명령에 너무 열심을 내느라 두 번째 명령에 점점 무관심해졌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어요.”
교회는 ‘사랑의 쌀 나눔’ ‘저소득 어르신 장학사업’ 등을 시작으로 2003년부턴 홀몸 노인들의 영양을 챙기고 매일 안부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우유배달 사역을 펼치고 있다. 14년 전 100가정으로 시작한 우유배달은 동참하는 교회와 성도, 기업들의 후원으로 이제 1000여 가정으로 확대됐다. 호 목사는 “전날 배달한 우유가 남으면 우유배달원들이 교회로 연락을 주는데 그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다”며 “매년 20여통의 전화가 오는데 춥고 기력이 쇠해지는 12월부터 2월 사이엔 더욱 긴장하게 된다”고 귀띔했다.
최근엔 지역 내 기초수급 장애인 20여 가정에 생필품과 음식을 전달하고, 2개월마다 3명씩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사랑의 틀니’ 사역도 시작했다. 2년여 동안 고사해왔던 옥수중앙교회 사역에 관한 책도 출간됐다. 책 이야기에 호 목사는 “유별난 이야기도 아니고 유별나서도 안 될 이야기”라며 거듭 염려를 전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함께해 준,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할 줄 동역자들에 대한 이야길 남겼다.
“우리 교회야 동네일이니 그렇다손 쳐도 아무 관계없는 이 곳 주민을 위해 착한 사마리아인이 돼준 분들은 더 귀할 수밖에 없죠.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틈 사이에 심은 꽃모종이 이만큼 향기를 낸 것처럼 앞으로도 위로와 희망의 꽃향기가 더 널리 퍼져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최기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