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계에는 ‘거짓’ 전술을 구사하는 동식물들이 많다. 그 중 ‘꿀벌난초’라는 식물이 있다. 이들은 화밀, 즉 꽃꿀이 없다고 한다. 벌을 끌어들일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이들은 교묘한 계략을 쓴다고 한다.
꽃 모양 자체를 암컷 벌의 날개와 더듬이 모양을 흉내 낸다. 거기다 암벌의 향기를 모방한 페로몬까지 방출한다. 수컷 벌들이 깜박 속아 날아 들어 가루받이는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종족 번식의 목적을 달성한다.
아이들도 의외로 거짓말을 잘한다.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말이다. 이에 부모들은 배신감을 느끼고 분개하여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거나 ‘저 녀석이 사기꾼이 되려고 저러나?’며 혹독하게 다룬다. 하지만 아이들의 거짓말은 먼저 이유를 들어봐야한다.
사실 5세 이전의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 속 공상이나 상상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해 거짓말을 한다. 예컨대 어떤 장난감을 몹시 갖고 싶었던 아이는 마치 그것을 갖고 있는 양 친구에게 떠벌리며 자랑을 하기도 한다.
게임에서 규칙의 중요성도 알지 못한다. 피아제도 이 시기의 아동들은 옳고 그름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런 아이들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며 야단을 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오히려 이 시기에는 거짓말(?)을 좀 하는 아이들이 사회성도 좋고 상상력도 풍부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인지 과학자 데이비드 리빙스턴 스미스는 인간을 ‘호모 팔락스(Homo Fallax·속이는 인간)’로 규정한다. 그는 거짓말이란 게 진화를 위해 장착한 내재적 본능이라고 말한다.
만 5세 정도가 되면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숙제를 안 해서 야단맞을 까봐 두려워서, 힘든 것을 일단 회피하기 위해, 관심을 받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이럴 때 야단부터 치게 되면 아이는 어른에게 마음을 아예 닫아 버리고 거짓말은 더 늘어난다.
먼저 아이를 야단치기 전에 아이의 얘기를 먼저 들어봐야 한다. 그리고 부모가 너무 엄격해서 아이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게 하는 위협적 존재였다면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힘든 일을 피하는 거였다면 책임감의 중요성을 알게 하고 회피 행동의 댓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관심이 부족했다면 사랑과 관심을 주어야 한다.
물론 부모의 양육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아이들이 있기는 하다. 타고난 충동성이 있는 아이들이다. 그중 심한 경우가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다. 이도 역시 야단만 쳐선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어째든 5~10세 아이들은 처벌이 두려워서라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한다. 이 시기 아이들의 도덕성 수준이나 판단의 기준은 거짓말하면 ‘어른에게 야단 맞으니까’라는 초보적 단계다. 피아제는 이를 ‘타율적인 도덕성 발달 단계’라고 했다. 타율적이기 때문에 매우 경직되어 있어 잘못된 행동을 하는 친구는 보아 넘기지 못하고 선생님께 이야기 한다. 초등학교 시절 유난히 고자질을 잘하는 친구를 본 적이 있을 거다.
요즘 최순실 청문회를 보면 성인들, 하물며 사회적으로 성공 혹은 출세했다고 평가 받는 사람들의 거짓말을 끊임없이 보게 된다. 지긋지긋해서 멀미가 날 지경이다. 국민들 아니, 친구나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뻔한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아무리 죄를 지어도 들키지만 않으면, 처벌만 받지 않으면 된다는 7세 어린이의 수준이나 비슷한 셈이다. 아니 ‘꿀벌 난초’처럼 생존의 본능에 준거하는 식물적 수준이다.
앞으로 나올 지도자는 적어도 법과 사회적 질서를 준수하며, 사회 속에서 개인의 의무를 하려고 하는 18세 이상의 도덕 발달수준 되어있는 ‘성인’이어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모임에서 들은 한 지인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에게 공부 열심히 하란 말 못하겠어요. 평범하게 자라도 잘못하면 남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는데, 공부 잘해서 나쁜 짓하면 너무 많은 사람에게 죄를 지을 수 있잖아요”라는 말에 참석자 모두 격하게 공감했다.
현명한 부모라면 아이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잘못으로 남들이 받을 고통을 이해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호분(소아정신과 전문의,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