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파문' '지진공포증' '아동학대' '강남역 살인사건' '복면가왕의 인기' '인공지능 대결' '연예인 정신건강' '트럼프 당선' '혼밥, 혼술하는 청년들' '노인 정신건강과 운전'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가 올해 사회적으로 큰 이슈를 불러 일으켰던 사건을 중심으로 선정해 28일 '사회정신건강 10대 뉴스'다. 연구소는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등 의견을 바탕으로 10대 뉴스를 선정했으며 각 항목마다 전문가의 사회심리, 정신학적 분석 의견을 내놨다.
1. 국정농단 파문=MRI로는 볼 수 없는 거짓말의 저 편, ‘사회적 신뢰’
올 한해를 되돌아보면 정치인이나 유명인의 ‘거짓말’ 이슈가 많았다. 연예인들이 성매매·성범죄 혐의에 휘말려 곤욕을 치렀다. 대통령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사태 역시 거짓말 논란에서 빼놓을 수 없다. 하나의 사실을 두고 서로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건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한 번 이상은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석주 교수는 “심리학 실험 결과 순수할 것 같은 어린아이도 거짓말을 한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거짓말을 밝혀내기 위한 뇌과학 지식과 관련 기술 발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며, 기술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 이상으로 “내 거짓말로 인해 다른 사람이 받을 고통을 떠올리고 함께 아파할 수 있는,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줄 아는 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2. 지진 공포증=‘보이지 않는 위협’ 가득한 마음 비워야
지난 9월 규모 5.8에 달하는 지진이 경주 일대를 덮쳤다. ‘안전지대’라 생각했던 한반도에 이토록 큰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두렵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지진 이후 지금까지 500여 차례에 달하는 여진이 계속되자 지진공포증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대기의 흐름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태풍이나, 파고(波高)로 볼 수 있는 지진해일(쓰나미) 등 다른 재해와 달리 “지진은 ‘보이지 않는 재난’이기에 불안감이 더 크다”고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홍진표 소장은 설명한다.
홍 소장에 따르면 2001년 미국 9·11 테러 당시 뉴욕에서 가까이 거주할수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발생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접 겪은 이뿐 아니라 주변 지역 거주자, 언론매체를 통해 시청한 이들 모두 불안을 호소할 수 있다. 홍 교수는 “불안으로 가득찬 마음을 비우고,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채우자”며 “정신적 트라우마 관리 대책, 체계적 심리 지원 시스템 구축 등의 정책적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3. 아동학대=“새엄마는 ‘역시 새엄마’일까?”
지난해 12월 인천의 한 수퍼마켓 주인이 맨발로 혼자 돌아다니는 작은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아이는 당시 11살이었지만 몸무게는 16kg에 불과할 정도로 말랐다. 경찰 조사 결과 아이의 친아버지와 동거녀는 2년여 동안 아이를 집안에 가둔 채 굶기고 때린 것으로 드러났다. 잇따른 아동학대 사건에 국민적 공분이 커지자, 정부는 학교를 오래 결석하거나 취학하지 않은 학생을 대상으로 아동학대 여부 조사에 나섰다.
어떤 이들은 “친부모가 아니라 계부·계모라서 아이를 학대하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아동학대 가해자의 대부분(80%)은 친부모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계부모들은 아이를 잘 키우지 못할 것이라는 사회적 편견에 고통 받고 있다. 김석주 교수는 ‘사악한 계모’ 이미지가 심리학적으로 어떻게 형성됐는지 설명하며, “새엄마도 충분히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아동을 학대하는 계부모는 가정생활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계부모들의 정신적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새로 형성된 가족의 행복을 만드는 일”이라고 제언한다.
4. 강남역 살인사건=중증 정신질환자 대책, 전 사회적 논의 필요해
지난 5월 서울 강남역에서 ‘여성들이 나를 견제하고 괴롭힌다’고 생각하던 한 남성이 젊은 여성을 살해했다. 이 사건으로 여성혐오와 여성에 대한 폭력을 고발하는 사회운동이 일어났다. 동시에 ‘우리 사회가 중증 정신질환자와 함께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도 던져줬다.
중증 정신질환자는 역사적·사회적으로 막연한 공포와 불안의 대상이 돼 왔다. 홍진표 소장은 “중증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존중하면서도, 이들이 사회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사회 제도를 운영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홍 소장은 “중증 정신질환자들도 꾸준한 치료와 관리를 통해 큰 문제없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며 “정신과 치료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5. 복면가왕의 인기=공정한 경쟁 돕는 ‘복면’…탈락자에게 박수치는 사회 되어야
복면을 쓴 연예인이 노래 실력을 겨루는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 가창력을 감상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복면 쓴 출연자가 누군지 맞추는 재미도 컸다. 복면은 외모와 경력 등을 가리고 오직 실력을 평가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현실에는 복면이 없다. 많은 이들이 분노한 정유라씨의 “돈도 실력”이라던 말처럼, ‘빽’이나 연줄이 없으면 실력이 있는 이도 피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복면 쓴 대가와 신인이 평등하게 경쟁하는 프로그램에 많은 시청자들이 환호한 까닭이다.
모든 선입견과 편견을 없앨 수 있을까? 모두 없애는 것이 옳은 것일까? 김석주 교수는 “우리 사회는 배경과 스펙을 얼마나 가릴지를 고민하고 있지만, 성공과 승리만을 강조하고 치열한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공정한 경쟁은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김 교수는 그에 앞서 “누군가 승리하고 누군가는 패배하는, ‘경쟁과 질투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한다.
6. 인공지능 대결, 알파고 쇼크: 인간과 닮은 지능, 인간과 다른 지능
올해 전 세계인을 놀라게 한 이슈 중 하나는 ‘알파고(Alpha Go) 쇼크’가 아니었을까. 지난 3월 이세돌 9단이 바둑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에 패배했다. 많은 이들이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예측했지만, 알파고가 5번의 대국 중 4번 승리했다. 인공지능 기술은 빠르게 발전해 의료·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되고 있다. ‘인공지능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이들이 늘어날 수 있다’거나 ‘인간이 인공지능을 통제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걱정도 나온다.
과연 인공지능은 인간을 넘어서게 될까? 삼성서울병원 전홍진 교수는 “이세돌 9단이 평생 수련으로 얻은 지혜와 인생의 이치, 희로애락을 알파고가 깨닫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를 토대로 무한반복학습을 통해 능력을 축적한다. 따라서 많은 지식을 암기해 답을 도출하는 작업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희로애락과 같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상황을 적절히 판단해 대응하는 상호작용 작업을 수행할 인공지능은 현재로서는 개발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 교수의 설명이다.
7. 혼밥혼술하는 청년들=‘건강한 혼자’가 더 많아지기 위해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영화보고…’ 4년 전 한 걸그룹이 부른 노래 가사 속 ‘나 혼자’라는 말에는 처량하고 쓸쓸한 느낌이 가득했다. 하지만 올해 인기를 끌었던 한 케이블채널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많은 20~30대 청년들은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셨다. 극중 주인공은 혼자 술을 마시면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며 “혼술이 달콤”하다고 말한다.
삼성서울병원 이효철 교수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두고 “오늘날 ‘혼밥·혼술’은 관계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이 스스로 만든 작은 쉼터 같은 것”이라며 “맹목적으로 관계맺음을 강조하던 우리 사회가 유아기적 불안에서 벗어나 한 단계 성숙해졌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동시에 이 교수는 “어쩔 수 없이 혼자 밥을 먹으며 고독을 감내해야만 하는 ‘비(非)자발적 혼밥족’의 마음 건강도 함께 살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8. 연예인의 정신건강=화려한 은막 뒤 공황장애·우울증 앓는 유명인들…적극적으로 대처해야
최근 연예인의 정신건강과 관련한 이슈나 사건이 잇따라 수면 위로 올라왔다. 드라마 남자주인공을 맡았던 배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아이돌가수와 배우들은 잇따라 성추문과 성매매 논란 등에 휩싸였다.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투병하는 연예인의 이야기는 이제 연예가 화젯거리로 소모될 뿐이다. 연예인의 화려한 삶을 선망하는 청소년은 점점 많아지지만, 정작 그들의 정신건강 문제는 여전히 체계적으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이효철 교수는 이에 대해 “연예기획사가 소속 연예인의 정신건강을 능동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회사가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복지제도이며, 소속 연예인의 정신건강 문제로 회사가 겪을지도 모를 어려움을 회피할 수 있는 투자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연예인들에게도 “인기의 유한함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9. 노인 정신건강과 운전
지난 11월 갑작스럽게 끼어든 차량 때문에 관광버스가 전복돼 4명이 숨지고 20여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76세 고령운전자였던 그는 경찰 조사에서 “나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은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교통사고 사망자는 줄어드는 반면 고령운전자가 낸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늘어나는 추세다. 인구 고령화가 심각한 일본에서는 이미 고령자의 운전면허 유효기간을 연령에 따라 차별화하는 등 고령운전자 사고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안이 시행 중이다. “우리나라도 고령운전자 대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몸의 기능이 떨어진다. 시력과 근력 등 신체능력뿐 아니라, 주의력이나 인지기능도 저하되기 마련이다. 전홍진 교수는 “한 연구 결과 65세 이후 연령이 5세 증가할 때마다 인지기능이 저하된 노인 비율이 10%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치매나 노인우울증 등의 질환이 판단력이나 반응속도 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전 교수는 “노인의 삶의 질과 사회 활동을 위해서라도 그들이 더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교육하는 등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10. 트럼프 당선=어디까지를 ‘우리’로 볼 수 있을까?...분리, 그리고 공감하기
지난 8일 미국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유세 기간 동안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거나 무슬림·여성·흑인 비하 발언 등을 공공연하게 해왔다. 많은 유권자들은 왜 그에게 표를 던졌을까? ‘우리 미국인이 잘 살지 못하면 세계 평화나 해외 원조가 무슨 소용이냐’는 미국인들의 속마음을 자극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가 속한 집단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동질적이고 공통점을 가진 이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석주 교수는 이에 대해 “‘우리’와 ‘그들’을 철저히 구별하고, 그들에게 분노와 증오를 투사하는 것은 정신의학적으로 건강하지 않다”며 “대한민국 사회가 보는 ‘우리’의 범위를 좀 더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