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겨자씨] 젊은 예수와 윤동주

입력 2016-12-26 13:21
별의 시인 윤동주 흉상. 중국 지린성 대성중학교 교정. 중국은 그를 중국의 소수민족 조선족의 시인으로 만들어가는 동북공정을 지속하고 있다. 2015년 7월.

스물 여덟의 삶으로 생을 마감한 윤동주 시인은 어찌 그리 영혼이 맑았을까.

 서른셋의 공생애를 살다간 예수는 어찌 그리 죽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을까.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찌 그리 영혼과 사랑을 알지 못할까.

 또 나는 어찌 그리 죄짓고 회개하는 일을 반복할까.

우리는 거울에 구리빛 이끼도 끼지 않았는데 왜 이리도 욕될까.

詩 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滿)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전정희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