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한국사랑’ 구애련 선교사의 특별한 성탄 선물

입력 2016-12-26 11:14
구애련 선교사의 생전 모습

“내 재산 중 일부는 꼭 그렇게 써 주세요.”

2013년 11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생을 마감한 마리온 커런트(여·1932~2013·한국명 구애련) 선교사의 유언은 3년이 지나 성탄 선물이 되어 한국에 돌아왔다.

성탄절을 열흘 정도 앞둔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총장실에서는 특별한 전달식이 열렸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총회장 권오륜 목사)가 구 선교사의 재산 중 일부인 12만7550 캐나다달러(약 1억1200만원)를 각각 연세대 원주캠퍼스와 연합신학대학원에 절반씩 장학금으로 기증한 것.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격동의 한국’ 한복판에서 살아온 독신 여선교사의 한국사랑은 남달랐다.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물리치료학과 작업치료학을 전공한 구 선교사는 27세였던 1959년 한국에 들어왔다. 캐나다연합교회에서 기장 교단 선교사로 파송 받은 것. 앞서 그는 대학 시절, 선교사로 헌신키로 결단한 뒤 미국 예일대에서 한국어를 1년간 공부했다.

그는 1997년 귀국하기 전까지 38년 동안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물리치료사로, 원주캠퍼스 보건학과 재활학과 교수(1981~1997) 교수 등으로 활동했다. 구 선교사는 물리치료사 양성교육기관이 없었던 1960년대 처음으로 수련생을 모집해 가르치면서 국내 물리치료학 교육의 선구자이자 산 증인으로 꼽힌다.

암울한 군사독재 시절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던 구 선교사는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 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당시 박정희 정권이 독재 저항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대규모 공안 사건인 ‘인민혁명당 사건(인혁당 사건)’을 지켜보면서 세계 각국의 선교사들과 모임을 결성, 출판 등을 통해 한국의 정치현실을 해외에 알렸다.

반독재·인권 활동 등에 따른 핍박과 고난도 감수해야 했다. 비자를 3개월에 한번씩 갱신한 적도 있었고, 편지 등을 주고받을 때는 암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급기야 면직을 당하기도 했다. 한번은 그가 한국과 서양의 문화를 비교한 책을 출간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그의 전화를 도청하던 담당 형사가 가장 먼저 축하 인사를 건넨 적도 있었다. 

그의 섬김과 사랑은 장애인과 어린아이 등 낮은 곳으로도 구석구석 흘렀다. 엄한 교육자, 자선가, 신실한 신앙인, 장애인들의 대부, 개척자, 좋은 친구, 하늘이 내린 천사…. 400명이 넘는 그의 제자들이 스승을 생각하며 남긴 다양한 수식어들이다. 

캐나다연합교회가 기장 총회에 파송한 캐서린 크리스티 목사(왼쪽)가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총장실에서 김용학 연세대 총장에게 구애련 선교사가 기부한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연세대 제공

생전의 구 선교사는 한 인터뷰에서 “계란의 겉은 하얗고 속은 노란 것처럼 내 마음은 이미 한국인이 됐다”고 고백할 정도로 한국사랑은 지극했다. 연세대 관계자는 “한국과 학교, 학생들을 깊이 사랑하신 구 선교사님의 유지를 잘 받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