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육연대회의 “국정교과서, 국민 아닌 정부가 역사의 주체”

입력 2016-12-22 16:51
역사교육연대회의는 22일 국정 역사교과서를 ‘민족도 시민도 없고 국가와 정부만 있는 교과서’라고 평가했다.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모인 역사교육연대회의는 이날 서울시청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국정 역사교과서 현대사 서술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성신여대 홍석률 교수, 건국대 정진아 교수, 고려대 허은 교수, 조선대 기광서 교수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현대사를 정치·경제·노동·남북관계로 나눠 서술의 문제점을 분석했다.
 정치사 서술 분석을 맡은 성신여대 홍석률 교수는 “국정역사교과서가 사실보다는 독재정권의 명분을 선택적으로 서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는 5·16군사쿠데타와 3선 개헌 등을 설명할 때 집권세력이 내세운 ‘명분’을 집중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또 신군부 세력의 12·12 쿠데타의 경우 헌정질서 유린에 대한 언급이 있는 반면, 5·16쿠데타의 경우 민정 이양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만을 문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냉전시기 안보 논리로 독재정권을 합리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제사의 경우 정치사와 분리해 서술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제기됐다. 경제사 서술을 분석한 건국대 정진아 교수는 “수량적 통계와 경제학적 논리를 제시하는데 있어서는 한층 정밀해졌다”면서도 “경제정책은 국정수행의 일환으로 추진되기 때문에 정치사와 분리해서 서술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중화학공업 정책은 유신독재를 뒷받침하기 위해 급속히 추진된 측면이 있지만 국정 역사교과서는 이러한 점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또 한일협정, 유신체제 하 중화학공업 육성 등 역사적 해석과 평가가 필요한 사실에 대해서는 일반적 사실만 나열하는데 그쳤다고 분석했다.
 국정 역사교과서가 가장 소홀하게 다룬 분야는 인권·노동문제였다. 고려대 허은 교수는 “국정 역사교과서의 전반적인 서술기조는 냉전반공주의와 성장주의에 기반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조가 노동, 인권 분야에서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허 교수에 따르면 유신체제가 국민들의 의식과 일상을 어떻게 통제했는지 국정 역사교과서에는 언급돼있지 않다.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전개한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 서술도 빈약하다.
 일관성 없는 남북관계 서술도 문제로 지적됐다. 조선대 기광서 교수는 “북한 관련 서술은 김일성 3대 체제의 권력문제에 지나치게 집중돼있다”며 “북한의 사회경제적 변화, 체제의 작동구조는 생략돼있다”고 했다. 북한에 대한 적대심을 심어주는 서술로 일관하다 말미에는 ‘남북관계는 민족이라는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상호협력해야할 특수관계’라는 모순을 보여주고있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간첩사건 ‘동백림 사건’을 축소 서술하거나 ‘민주를 거쳐 남하하는 소련군이 미군보다 한반도에 먼저 들어왔다’고 하는 등 사실오류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역사교육연대회의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사실 오류와 왜곡으로 가득 찬, 대한민국정부 수립의 정신을 훼손하고 역사적 성찰도 없는 반민주적 교과서”로 규정하고 국정 역사교과서의 철회를 촉구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