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의 ‘박근혜 특검’ 생생기록] 18. 국민연금·정유라 찍고 이재용 박근혜로

입력 2016-12-21 17:58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회원들이 21일 오전 특검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 앞에서 신속하고 성역없는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박영수 특검팀은 오늘 공식 수사 첫날을 맞아 국민연금공단 등에 대한 동시다발 압수수색으로 포문을 열었습니다. 첫 수사의 초점은 박근혜 대통령과 삼성그룹 간의 뇌물죄 의혹 규명이었습니다.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딸로 독일에 체류 중인 정유라(20)씨에 대해서는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외교부를 통한 여권 무효화 조치에도 나섰습니다. 독일과의 사법공조를 통해 국내로 강제송환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한순간에 유명인이 된 정씨의 민낯을 국민들이 볼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전광석화 같은 광폭(狂暴) 행보로 특검팀의 70일간(수사 기간)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그 첫째 날(12월 21일 수요일)의 이야기입니다.

특검팀이 21일 서울 강남구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에서 압수수색한 상자를 옮기고 있다. 뉴시스

# 뇌물은 ‘최순실 특혜’, 대가는 ‘삼성 합병’?=이른 아침부터 검사와 특별수사관 등을 보내 10여곳에 대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실시했습니다. 첫 번째 대상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입니다. 두 번째는 정부세종청사 내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입니다. 그리고 관련 임직원들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했습니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압수수색을 받은 바 있으나 복지부는 사상 처음입니다. 복지부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21일 오전 특검팀이 압수수색을 벌인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 뉴시스

지난해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국민연금이 지지해준 대가로 삼성이 최순실씨 일가를 특혜 지원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파헤치기 위한 것이죠. 이 합병은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의결권 전문위원회’의 의결 절차를 무시하고 그해 7월 10일 홍완선 당시 본부장이 주도한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의 독자적 결정으로 합병안에 찬성을 했습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를 권고했음에도 말입니다. 물론 국민연금은 이 결정으로 수천억원대의 평가손실을 봤습니다. 그리고 국민연금 찬성 결정 보름 뒤인 7월 25일에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청와대 단독 면담이 이뤄졌습니다.

뭔가 이상하죠. 우연찮게도 삼성은 지난해 합병 이후 미르·K스포츠재단에 204억원을 출연한 것 외에 정유라씨의 승마 지원, 최씨 조카 장시호씨 지원 등을 위해 최씨 측에 100억원 가까운 돈을 줬습니다. 앞서 합병 성사 직후 삼성이 최씨가 소유한 독일 현지법인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와 맺은 컨설팅 계약은 서류상으로는 220억원대입니다. 이런 거래의 뒷배가 박 대통령이란 의혹입니다. 바로 제3자 뇌물죄 수사죠.

특검팀의 1호 타깃이 된 삼성그룹. 21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뉴시스

# 현판식으로 총진군의 나팔 울리다=오전 9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치빌딩’ 특검 사무실 18층에서 공식 현판식이 있었습니다. 박영수 특검, 박충근 이용복 양재식 이규철 특검보, 윤석열 수사팀장, 어방용 수사지원단장, 조창희 사무국장 등 지휘부가 참석했습니다. 다들 굳은 표정의 엄숙한 분위기였습니다. 현판 제막만 간단히 진행됐습니다.

사무실 출입구 옆의 현판에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박영수’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박 특검은 “저희들은 국민의 뜻을 잘 읽고 법과 원칙에 따라서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이 올바른 수사를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공식 수사 개시를 알리는 행사죠.

특검팀이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마련된 특검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어방용 지원단장, 윤석열 수사팀장, 양재식 특검보, 박충근 특검보, 박영수 특검, 이용복 특검보, 이규철 특검보, 조창희 사무국장. 뉴시스

# 정유라를 체포해라=이규철 대변인(특검보)의 오전 정례브리핑 내용을 들어보겠습니다.

“오늘부터 특검의 본격적인 수사가 개시되었습니다. 현판식을 하면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국민들의 명령에 의하여 구성된 특검팀은 막중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 정도 수사를 할 것을 다시 한번 약속드립니다. 아울러 국민 여러분이 이 사건 수사에 많은 관심과 제보를 하여 줌으로써 저희들의 사건 수사에 도움을 준 점 감사드립니다.

압수수색 관련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특검은 금일 최순실의 삼성에 대한 제3자 뇌물공여와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찬성 간 대가 관계 및 국민연금의 배임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하여 보건복지부, 국민연금관리공단 사무실, 일부 임직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유라 체포영장 관련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특검은 정유라에 대하여 업무방해 등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20일)받았고 이를 근거로 독일 검찰에 수사 공조를 요청할 예정이며 여권 무효화 조치도 착수하였습니다. 또한 정유라 소재지 확인, 수사 중인 수사기록, 거래 내역, 통화 내역 및 재산 동결을 위한 사법 공조를 독일 검찰에 요청하였습니다.”

대변인 이규철 특검보가 21일 오전 특검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Q. 정유라 소재지 파악되나.
A.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곤란하다.

Q. 알고는 있나.
A. 추정하고 있다.

Q. 정유라에게 소환통보는?
A. 공식적으로 안 했다.

Q. 정유라 강제소환 방법은?
A. 체포영장을 국내에서 발부받은 뒤 독일 검찰에 보내면, 독일 검찰이 다시 독일 법원에 청구하는 절차를 거친다. 그 영장을 갖고 (독일 검찰이) 정유라를 체포하면 한국으로 바로 보낼 수 있는 것으로 안다. 여권 무효화 조치를 취하면 (불법 체류자 신분이 돼) 독일에서 바로 추방된다. 그런 가능성을 다 염두에 두고 있다.

Q. 얼마나 시간 걸린다고 보나?
A. 상황에 따라 자진귀국하면 빨리 해결된다. 최대한 법적 조치 취해서 하루빨리 송환할 수 있도록 하겠다.

Q. 정유라 혐의에 자금세탁이 들어가 있나?
A. 혐의는 말 못한다.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국정농단사건 첫 재판에 들어서고 있는 최순실씨. 뉴시스

# 최순실 일가 재산 추적… 외곽을 두드려라=윤석열 수사팀장은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을 최근 만나 최씨 아버지인 최태민씨 비리와 재산 축적 등에 관한 수사 단서를 수집했습니다. 최씨 일가가 불법적으로 재산을 형성하고 은닉했다는 의혹 사건도 특검법상 수사대상입니다.

정 전 의원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에 몸담아 ‘박근혜 후보’ 검증을 총괄했던 인물입니다. 당시 정 전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최태민과 박근혜 관계를 낱낱이 드러내면 박 대표를 좋아했던 분들도 밥도 못 먹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특검팀은 최씨 개인비서인 20대 여성도 제3의 장소에서 극비리에 조사했습니다. 최씨의 비리 정보와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학사 농단’과 관련돼 캐물었을 겁니다. 이 여성은 그간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노출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박정태 선임기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