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1일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 혐의’를 정조준하기 위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또 해외에 머물고 있는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정씨 신병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그동안 진용을 갖추고 검찰 수사자료를 면밀히 분석한 특검팀이 전방위 수사에 돌입한 것이다.
특검팀 특별수사관들은 수사 개시 첫날부터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와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을 포함해 10여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여 PC 자료와 서류 등을 확보했다.
특검팀 이규철 대변인(특검보)은 “최순실씨에 대한 삼성 측 지원과 국민연금공단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대가 관계, 국민연금공단 임직원들의 배임 혐의 등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국민연금공단 사무실과 일부 임직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고 말했다.
특검팀이 국민연금공단 사무실과 임직원 주거지, 복지부를 압수수색한 것은 박 대통령의 ‘뇌물 혐의’를 수사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국민연금공단-삼성-최순실-박 대통령으로 연결되는 의혹의 고리를 찾겠다는 것이다. 국민연금공단-삼성-최순실-박 대통령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혹이 제기된 만큼 당연한 수사방향이다.
의혹을 정리하면 이렇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건희 회장-이재용 부회장 사이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핵심 현안이었다. 두 회사의 합병비율은 제일모직 1주당 삼성물산 0.35주로 결정됐다. 국민연금공단은 두 회사가 합병하기 전에 삼성물산 지분 11.61%, 제일모직 지분 5.04%를 보유한 상태였다.
이런 조건으로 합병하는 것에 대해 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를 비롯해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권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공단은 합병에 찬성했다.
국민연금공단은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의결권 전문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찬성표를 던졌다. 두 회사의 합병에 따라 국민연금공단은 수천억원에 달하는 평가손실액을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
국민의 혈세가 허공으로 날아간 것이다. 최광 당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합병 찬성 의견을 주도한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을 경질하려 했으나 정부 고위 관계자의 압력이 들어왔다”고 폭로했다.
문제는 국민연금공단이 두 회사의 합병에 찬성한 뒤 얼마쯤 지나 박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단독 면담이 이뤄진 점이다.
합병 이후 삼성은 미르·K스포츠 재단에 204억원을 출연했다. 대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규모다. 또 삼성은 최순실씨가 소유한 독일 현지법인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와 220억원대 컨설팅 계약을 맺고 상당한 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의혹을 정리해 보자. ①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필요성 대두 ②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의 합병 반대 권고 ③국민연금공단의 합병 찬성, 수천억원 손실 발생 ④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면담 ⑤삼성의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 및 최씨 일가 지원 등으로 요약된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이러한 의혹을 밝히기 위해 집중 수사를 벌였으나 박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하고 특검팀에 사건을 넘겼다. 특검팀이 첫날부터 국민연금공단과 복지부 등에 대해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을 한 것은 국민연금공단의 배임 혐의, 삼성의 자금 지원과 대가성 관계, 박 대통령의 뇌물 혐의 여부 등을 총체적으로 규명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특검팀이 정유라씨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정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특검팀은 정씨의 여권 무효화 조치에 착수했다. 특검팀은 독일 검찰에 정씨의 소재지 확인, 수사 기록, 거래·통화내역 수집, 독일 현지 재산 동결 등 사법 공조를 요청했다.
특검 수사팀장인 윤석열 검사가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을 만나 최씨 아버지인 고(故) 최태민씨의 비리와 재산 관련 첩보를 수집한 점도 관심을 끌고 있다. 정 전 의원은 2007년 대선을 앞둔 한나라당 후보 경선 때 이명박 캠프에서 박근혜 후보에 대한 검증 작업을 총괄했었다.
정 전 의원은 당시 박 후보와 최태민·최순실 일가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추적했었다. 최태민씨는 1970년대 박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를 대행할 때부터 새마음봉사단 총재를 맡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는 21일 오전 특검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갖고 “국민의 뜻을 잘 알고 법과 원칙에 따라서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이 올바른 수사를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박 특검은 국민의 눈이 특검팀에 쏠려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박 특검의 각오처럼 오로지 법과 원칙, 양심에 따라 성역 없이 범죄 혐의를 파헤쳐야 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