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씨의 최측근인 고영태(40) 전 블루K 이사의 비극적 가족사가 한국 대표 고은(83) 시인의 대표작 '만인보'에 소개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고은 시인이 1986년부터 2010년까지 집필한 '만인보'는 4001편의 시를 30권으로 엮은 연작시다. 이 시집에는 시인이 인연이 닿았던 이들을 추억하는 내용으로 시작해 신라시대부터 근세까지 불승들의 행적, 1980년 5.18 광주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인물까지 5600여명을 다룬 대작이다.
그 중 고영태의 가족사는 ‘만인보’의 ‘단상 3353-고규석'편과 '3355번-이숙자'편에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고영태씨의 아버지 고규석씨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됐다. 고규석씨는 1980년 5월21일 광주시내로 일을 보러 갔다가 광주교도소를 지나던 중 군인들의 발포로 현장에서 숨졌다. 고규석씨가 37세, 고영태씨가 다섯 살 때다.
고영태씨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시던 중 군인들의 총에 맞아 숨졌다. 어머니가 며칠 동안 찾아다닌 끝에 광주교도소 안에 버려져 있던 아버지의 시신을 찾았다"고 말한 바 있다.
고은 시인은 ‘만인보’를 통해 고영태 가족의 생활상과 고규석씨 사망 이후 아내 이숙자씨가 남편을 찾기 위해 뛰어 다녔던 일화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다음은 고은 시인의 ‘만인보’의 일부이다.
만인보 단상 3353-고규석
"하필이면/ 5월 21일/ 광주에 볼일 보러 가/ 영 돌아올 줄 몰랐지/ 마누라 이숙자가/ 아들딸 다섯 놔두고/ 찾으러 나섰지/ 전남대 병원/ 조선대 병원/ (중략)/ 그렇게 열흘을/ 넋 나간 채/ 넋 잃은 채/ 헤집고 다녔지/ 이윽고/ 광주교도소 암매장터/ 그 흙구덩이 속에서/ 짓이겨진 남편의 썩은 얼굴 나왔지/ 가슴 펑 뚫린 채 /마흔살 되어 썩은 주검으로/ 아이고 이보시오/ 다섯 아이 어쩌라고/ 이렇게 누워만 있소 속 없는 양반
고은 시인은 남편의 사망 이후 이숙자씨가 다섯 자녀들을 어렵게 키우며 막내아들 고씨를 국가대표 펜싱 선수로 키워낸 과정을 묘사했다.
만인보 단상3355-이숙자
“고규석의 마누라 살려고 나섰다/ (중략)/ 광주 변두리에/ 방 한 칸 얻었다/ 여섯 가구가/ 수도꼭지 하나로/ 물 받는 집/ 방 한 칸 얻었다/ 망월동 묘역 관리소 잡부로 채용되었다// 그동안 딸 셋 시집갔다/ 막내놈 그놈은/ 펜싱 선수로/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 걸고 돌아왔다/늙어버린 가슴에 남편 얼굴/ 희끄무레 새겨져 해가 저물었다”
광주민주화운동 유족인 고영태씨가 펜싱 금메달리스트를 거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에 네티즌들은 “얄궂은 운명이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