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중 추락사고로 척추가 손상된 뒤 자살한 경비원에게 업무상 재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판사 장순욱)는 사망한 A씨의 유족이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 거부를 취소해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9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르면 업무상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업무상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업무상 재해로 본다"고 전제했다.
이어 "A씨는 근무 중 추락사고를 당하고 수술과 치료 등을 받았으나, 사타구니와 항문 주변에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고 대소변 장애를 겪었다"며 "의사에게 이같은 통증과 대소변 장애에 대해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설명을 들었고, 평생동안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절망감과 무기력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A씨처럼 척추 손상을 입은 환자들은 우울장애나 불안장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 A씨가 작성한 유서 내용을 보더라도 척추 손상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과 대소변 장애, 이들 증상이 영구 장애로 남을 것에 대한 신병 비관이 자살의 주된 이유임을 알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런 맥락에서 "A씨의 사망과 업무상 재해의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말했다.
A씨는 2014년 10월 B아파트의 입주자 대표회의의 관리사무소 직원으로 근무하던 중 이 아파트에 있는 모과나무 열매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2m 30cm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척수신경이 손상되고 요추3번이 골절돼 척추 수술을 받았다. 2015년 1월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고 혼자서 음식을 섭취할 수 있게 됐으나 대소변 장애는 크게 호전되지 않아 항상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병원으로부터 통증이 더 심해질 수 있고 평생 대소변 주머니를 달고 살아야 한다는 답변을 듣고 우울증세를 보였다. A씨는 가족들에게 유서를 보여주고 통증이 너무 심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등 우울증을 앓다가 같은 해 5월 재활치료를 받던 병원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들은 같은 해 12월 "A씨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임을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이듬해 1월 근로복지공단은 "A씨가 정상적인 인식능력이 뚜렷하게 저해된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지급을 거부했고, 이에 불복한 A씨 유족은 이 사건 소송을 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