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와 외로움에 지친 독거노인 등에 선물 전달
쪽방촌 주민과 여행객, 상인들 위해 캐럴 공연도
17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선 어김없이 수십만 개의 촛불이 바다를 이뤘다. 사람들의 함성이 도심을 깨우는 사이 서울역 건너편 쪽방촌에선 성탄캐럴 울려 퍼졌다. 빈자(貧者)들의 보금자리에 찾아온 조금 이른 크리스마스였다.
50여명의 더힘합창단(The HIM Choir) 단원과 어린 자녀들은 이날 선물꾸러미를 들고 남대문로 5가와 동자동에 위치한 1000여 세대 쪽방촌을 찾았다. 산타클로스 모자를 쓴 이들은 헝클어진 머리처럼 엮인 전깃줄 아래 가파른 골목길을 따라 쪽방촌 문을 두드렸다.
서울역 쪽방촌은 한국전쟁 직후 오갈 데 없는 피난민들이 판자를 엮어 거처를 만들면서 형성됐다. 강산이 수십 번 바뀌면서 주변은 고층 빌딩 숲을 이뤘지만 이곳은 덧난 상처처럼 가난의 잔상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쪽방촌에 사는 1,000여명의 주민 중 절반이상은 기초생활 수급자로 50~70대의 홀로 사는 노년층이다. 이들은 1평 남짓한 쪽방에서 창문에 덕지덕지 붙인 비닐과 전기장판 하나로 겨울을 난다. 몸과 마음을 파고드는 매서운 추위와 외로움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합창단원들은 이날 각자 집에서 가져온 쌀로 만든 가래떡과 어묵, 음료수와 성탄카드를 담은 선물세트를 전달하고 삶의 무게에 지쳐있는 이들의 차가운 손을 감싸 안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후엔 마을 입구에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 등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쁨을 알리는 성탄캐럴도 선보였다.
쪽방촌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는 김순애(76‧가명)씨는 “너무 춥고 외롭다. 이곳까지 찾아와줘서 너무 감사하다”면서 “모처럼 찬송을 따라 부르면서 마음이 편안해 졌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합창단은 쪽방촌에 이어 서울역과 인근 후암시장에서도 늦은 시간까지 캐럴공연을 이어갔다. 온 마을에 예수사랑의 온기가 소외된 자들의 보금자리에 스며들었다.
3년 전 창단한 더힘합창단은 이곳 쪽방촌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 단원들은 중‧고교생이었던 1970~80년대에 쪽방촌 인근 동자동 동암교회(담임목사 김병중)에서 만났다. 나이가 들면서 결혼과 취업 등으로 뿔뿔이 흩어진 친구와 선후배들이 30여년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의기투합한 것이다. 지금도 동암교회에서 매월 첫째와 셋째 주 월요일에 모여 합창연습을 한다. 지난 10월에는 이곳 쪽방 주민들을 위한 '사랑 믿음 행복의 노래' 연주회를 개최했다.
합창단 이름인 ‘HIM’은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의 '힘'에서 따왔다. HIM은 ‘하나님 사랑(Heart in Music), 우리의 믿음(Heaven in Music), 이웃의 행복(Happiness in Music)을 담은 노래’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합창단장 이중배(58‧사랑의교회)안수집사는 "모교회가 연약한 지역사회를 섬기는데 우리 합창단이 작게나마 쓰이고 있어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사회적 기업과 연대해 소외되고 힘없는 이웃들을 지속적으로 섬길것”이라고 전했다.
곽경근 선임기자 kkkwa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