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양정웅 “셰익스피어 작품을 전부 올리고 싶은데…”

입력 2016-12-18 10:38

연출가 양정웅(48)은 국내 연극계에서 손꼽히는 셰익스피어 스페셜리스트다. 그는 한국 전통 미학으로 풀어낸 ‘한여름밤의 꿈’으로 2005년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해 호평받은데 이어 2006년과 2012년 각각 한국 연극 최초로 권위있는 런던 바비칸 센터와 글로브 극장에 초청받았다. 2014년에는 전통 연희와 굿에 담아낸 ‘햄릿’으로 시티 오브 런던 페스티벌 무대에도 섰다.

 16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만난 그는 “글로브 극장 무대에 섰을 때 평생에 걸쳐 셰익스피어 작품을 전부 올리겠다고 호기롭게 맹세했었다”면서 “지금까지 7편을 연출했는데, 과연 37개나 되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모두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셰익스피어 400주년인 올해 그는 3편을 무대에 올렸다. ‘한여름밤의 꿈’을 4월 미국 보스턴, 6월 서울, 10·11월 중국 광저우·상하이에서 공연한데 이어 11월엔 지난해 예술의전당 제작으로 초연한 ‘페리클레스’를 다시 선보였다. 그리고 12월 ‘로미오와 줄리엣’(~2017년 1월 15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으로 셰익스피어 400주년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그는 “올해는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한 해였다. 우선 미국에서 처음으로 내 작품을 공연할 수 있어서 기뻤다. 그 다음으로는 지난 2002년 초연한 ‘한여름밤의 꿈’이 이제 낡았다고 생각해서 그만 공연하려고 했는데, 국내외에서 여전히 관객의 반응이 너무 좋아서 계속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를 마무리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여러 모로 인연이 깊다. 1997년 극단 여행자를 창단한 뒤 이듬해 처음 연출한 셰익스피어 작품이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만 벌써 5번째 연출이지만 매번 컨셉트와 색깔이 달라진다. 연출할 때마다 아쉬움이 남은데다 새로 연출할 때마다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면서 “이번 공연은 출연진을 8명으로 줄였지만 원작에 가깝게 대사에 충실했다”고 설명했다.

 대사 중심 연극을 벗어나 배우들의 신체로 만드는 이미지, 의상·음악·무대미술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감각적인 미장센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하지만 극단 창단 20주년을 앞둔 그의 취향도 많이 변했다.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평생 고수하는 예술가도 있지만 나는 세월의 변화에 따라 취향도 바뀌는 것 같다. 오랫동안 말을 줄인 이미지 연극을 해 왔지만 나이가 들수록 연극의 매력은 말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우리는 모두 말로 소통하지 않나.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은 결국 말이다. 셰익스피어는 수다스러운 우리 삶을 제대로 꿰뚫어 본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적인 무대 위에 펼쳐지는 이번 작품은 원작을 그대로 살린 대사와 속도감 있는 영상으로 독특하고 이질적인 매력을 만들어냈던 바즈 루어만의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동주’로 충무로의 샛별로 떠오른 박정민과 2010년 ‘클로저’ 이후 6년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문근영이 주역을 맡은 덕분에 티켓 판매는 진작에 완료됐다. 하지만 개막 이후 작품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않다. 아직 초반이긴 하지만 두 주역, 특히 문근영의 대사 소화 능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셰익스피어 작품은 배우의 화술이 정말 중요하다. 두 배우 모두 셰익스피어 대사의 어려움을 알고도 도전했다. 몰입이 좋은 배우들이기 때문에 곧 자신만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셰익스피어 작품 가운데서도 그는 ‘페리클레스’ ‘심벨린’ ‘태풍’ ‘겨울 이야기’ 등 후기 낭만극에 유난히 애정을 드러냈다. 셰익스피어 말년에 쓰인 이들 작품은 갑작스런 용서와 화해로 설득력이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는 “낭만 비극인 ‘로미오와 줄리엣’도 몬테규 가와 캐퓰렛 가의 화해로 끝나는데, 셰익스피어의 평생 주제는 용서와 화해였다. 말년이 될 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후기 낭만극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면서 “셰익스피어는 사람들이 힘든 삶 속에서 연극을 봄으로써 잠시나마 고통을 잊고 위안을 얻길 바랐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후기 낭만극에는 삶에 대한 강렬한 염원이 느껴진다”면서 “4~5년전 부정맥으로 죽을 뻔하다가 겨우 회복된 적이 있다. 그 후 후기 낭만극을 특히 좋아하게 된 것 같다”고 웃었다.

 내년은 셰익스피어의 나라 영국과 한국의 ‘상호교류의 해’다. 아직 구체적 내용을 밝힐 수 없지만 셰익스피어와 인연이 깊은 그는 올해 못지 않게 바쁠 것 같다고 여운을 남겼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