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 뮤지컬로 태어나다

입력 2016-12-18 00:33 수정 2016-12-18 00:34
17일 오후 3시쯤 인천중구문화회관 공연장 입구는 지나간 시절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송용일 극단 십년후 상임연출은 “부평아트센터와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매진사례를 기록한 뮤지컬 ‘성냥공장아가씨’를 장기공연 체계로 전환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병직 인천시 중구 문화예술과장도 상기된 표정으로 관객들의 반응을 살폈다.

객석에 앉아보니 50~60대보다 청년들이 더 많았다. 예매 관객들보다 현장 구매자들이 많은 것도 독특했다. 2만원에 뮤지컬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는 반응도 있었다.

뮤지컬 성냥공장 아가씨는 새마을 노래와 성냥공장 아가씨 노래가 울려 퍼지면서 관객들을 가난한 시절로 안내했다.

썬데이서울 이야기가 나오고, 국민체조와 함께 컨베이어 시스템에 맡겨진 어린 여공들의 고달픈 삶이 무대위에 펼쳐졌다.

당시 인천의 번화가였던 배다리 일대에는 성냥공장 여러곳이 있었다. 이 뮤지컬은 인천이 노동자도시였다는 사실을 형상화하는데 일단 성공한 듯 하다.

노동자들은 “우리는 꿈만 먹고 살아야 하느냐”고 말한다.

뮤지컬 ‘성냥공장아가씨’는 미국에 가서 그림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여공 인숙의 삶을 조명하면서 한 여공의 이야기를 근거로 인천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사진과 태극기가 등장하고, ‘안되면 되게하라’는 군사독재 시대의 구호가 무대위에 펼쳐지면서 여공들이 성냥을 빼돌려 도둑으로 몰리는 사건은 극적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몸수색을 당하는 과정에서 성추행을 당한 인숙이 미군기지촌으로 흘러들어간 것도 이 때였다.

관객들은 이 지점에서 눈물을 찍어냈다.

국회의원 공천에 탈락한 성냥공장 사장은 임금체불로 여공들의 삶을 더 비극적으로 몰아간다.

이 때 누군가 성냥을 생산하는 공장에 불을 질렀다. 공장이 불타는 영상은 관객들을 더 몰입하게 만들었다.

범인으로 지목돼 경찰에서 조사를 받는 인숙의 언니는 동생이 불을 질렀다고 생각하고 죄를 뒤집어쓴다. 성탄절을 앞두고 우리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청년 예수가 잠시 떠오른 것은 왜 일까. 

화염속에서 정신줄을 놓아버린 아버지도 저 세상으로 떠나 버린다. 그는 한때 성냥공장의 화약연구자였다.

대한성냥공장 방화범은 누구였을까.

“세상은 돈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던 사장은 스스로 머리에 권총을 쏴 생을 마감한다.

성냥공장이 사라진 곳에 기지촌 풍경이 펼쳐졌다. 

관객들은 여공 역할을 하던 배우들이 기지촌 여성으로 변신한 장면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기지촌으로 간 인숙이 방화범이 아니었다. 관객들은 이 대목에서 또한번 숨을 죽였다.

인숙이 갔을 때는 이미 공장이 불에 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인숙은 미군병사와 결혼해 혼혈아를 낳아 미국으로 가게 됐다며 관객들 앞에 선다.

인숙의 언니가 6세 때 입양된 배다른 언니이고, 인숙은 언니가 입양된 다음해에 태어났다는 사실도 알게 되면서 두사람이 극적으로 화해하는 장면에 와서야 관객들도 긴장감을 풀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언니는 성냥공장 반장과의 사랑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짓는다. 배우들의 격렬한 춤은 이 무대가 뮤지컬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뮤지컬 성냥공장아가씨는 50~60대들에게 군대시절의 노래를 생각나게 하는 힘이 있다. 이 뮤지컬은 그 군대시절의 상처를 치유하는 힘도 있었다.

인천 부평의 60대 엄명호씨는 페이스북에서 “캬~~군대에서 젤 인기있는 노랜지 군가인지”라고 답글을 올렸다.

박상은 전 국회의원은 “낼 앵콜공연 했으면 좋겠다”고 답글을 달았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