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 조각사유라는 말이 있다. 법적 용어인데 쉽게 말해 명예훼손 소송에 걸리지 않는 3가지 원칙쯤 된다. 사실적시, 공공의 이익, 비방목적 없음이다.
명예훼손 소송에 걸리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첫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한다. 둘째, 그 표현에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셋째, 비방 목적이 없어야 한다.
이 3가지 원칙을 모두 지키면 제아무리 거액의 소송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이길 수 있다. 백전백승이다.
국민일보가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구 안상홍증인회)’라는 반사회적 종교집단으로부터 6억4000만원의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다가 승소한 것도 3가지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팩트에 근거해 하나님의교회가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했으며, 부녀자의 이혼 가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물론 비방목적이 없었다. 한국교회와 사회를 반사회적 종교집단으로부터 지킨다는 공공의 이익에 부합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렇다면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중심에 기독교계가 있다”는 발언은 명예훼손에 해당될까, 해당되지 않을까.
첫째, 사실적시부터 보자. 기독교는 최순실을 앞세워 국정농단을 한 적이 없다. 재단법인 미르·케이스포츠 설립 및 모금에 손을 대지도 않았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특혜에는 더더욱 관여하지 않았다.
만약 의혹이 있었다면 언론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관련 기사가 없다.
둘째, 공공의 이익을 살펴보자.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한복판에 기독교가 있다는 의혹은 얼핏보면 공공의 이익을 위한 표현의 자유처럼 보인다.
그러나 팩트 하나 제시하지 못하는 의혹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공공의 이익을 가장한 말장난일 뿐이다.
셋째, 비방목적을 살펴보자. 요즘 대한민국 사회에서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 거론되는 것 자체가 ‘오물통’을 뒤집어쓰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심에 기독교가 있다니. 기독교에 대한 망신주기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찰공무원, 교수, 베스트셀러 작가, 방송인 출신이기 때문에 명예훼손 요건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게다가 개인적 감정이나 의견을 공무에 개입시킬 권한이 없다는 것을 수십년간 공무를 집행하며 몸에 체득한 사람이다.
그렇게 교양 있는 지식인이 그의 말마따나 ‘여론의 분노감정’을 이용한 듯한 폭탄 발언을 했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중심에 기독교계가 있다!” 국회의원 면책특권이 떠오른지도 모른다.
문제를 제기하자 표 의원은 사과는커녕 슬그머니 말을 바꿨다. 그리고 기독교계가 “40년 전 최태민의 구국봉사단 훈련을 받은 목사들, 박 대통령에 대한 일방적 찬양을 하며 야당과 비판적 지식인, 진보 언론을 종북으로 내걸고 세월호 유가족을 폄하한 일부 정치적 목사들”이라고 둘러댔다.
표 의원이 발언과 해명을 하도 자신 있게 하길래 그가 공동발의했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찾아봤다.
그런데 A4용지 42쪽 분량의 소추안 어디에도 ‘기독교’ ‘40년 전 훈련받은 목사들’ ‘일부 정치적 목사들’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다만 세계일보 문제와 관련해 통일교는 나왔다).
그렇게 자신 있다면 탄핵소추안에 한마디라도 넣었어야 하는 게 상식 아닌가.
그래서 표 의원과 보좌관에게 ‘40년 전 인사들, 정교유착을 한 일부 정치적 목사님들이 어떻게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중심에 있다는 것인지 근거를 밝혀달라’는 질문을 남겼다.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다’는 것일까. 표 의원은 1주일째 침묵 중이다.
그는 ‘공범들의 도시’(김영사)라는 책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
“범죄 문제를 범죄라는 것으로만 보고 해결하려고 해서는 절대로 답이 안나옵니다. 얼굴에 난 여드름을 손가락으로 짜려고만 하면 더 덧나잖아요. 여드름이 발생하게 된 배경, 내장의 문제, 소화기능의 문제든, 분비물, 피지, 스트레스, 이런 다양한 문제들의 원인을 찾아서 접근해나가야 되듯이 범죄라는 것 역시 범죄 현상의 이면에 있는 원인을 살피고 환경과 심리의 문제를 살펴야지, 범죄로 드러난 것만 때려잡고, 범죄 예방 교육을 시키고, 이런 것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정말 단세포적인 접근입니다.”(120~121쪽)
표 의원은 천주교 신자다. 그런 스타급 국회의원이 공적 장소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웃종교를 향해 근거도 없는 비판을 서슴없이 쏟아냈다.
그렇다면 표 의원의 발언이 나오기까지 ‘현상 이면의 원인’은 무엇일까. 유명 국회의원까지 가세한 반기독교 정서의 원인을 차근차근 살펴봐야겠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