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들은 역사 안의 차가운 바닥에서 이날 밤을 보내야했다. 대부분 냉기를 막기 위한 골판지 재질 박스와 신문지를 손에 들고 있었다. 한 60대 어르신은 갈라진 틈으로 찬바람이 새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비닐로 꽁꽁 싸맨 신발을 신고 있었다. 청년들이 손난로를 건네자 이들은 주머니 깊숙한 곳에 푹 쑤셔 넣었다. 2008년부터 꾸준히 이 사역을 해 온 조한원(33)씨는 “노숙인들은 겨울에도 추위를 피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역사 안에서 주무시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노숙인들은 각자 자리로 돌아가 바닥에 박스를 깔고 벽을 향해 앉은 채 한 끼를 때웠다. 손에 장애가 있어 물건을 들 수 없는 노숙인에게 김성광(36)씨가 사발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가져다줬다. 사발면 두 개를 달라고 조르는 노숙인도 있었다. 내일 아침 동료의 끼니까지 챙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만 많이 주면 너도나도 더 달라고 할 게 분명했다. 난처해하던 봉사자는 이목이 있는 곳에선 한사코 거절하다가 다른 노숙인들이 보지 않을 때 몰래 한 개를 더 챙겨줬다. 뚜껑이 있는 통조림통을 내밀며 “깍두기를 채워달라”는 이도 있었고, “조금 더 큰 귤을 주면 안 되겠냐”는 사람도 있었다.
거리의 천사들 이창성 자립지원팀장은 “이분들도 하나님이 만드신 귀한 분들”이라며 “우리의 가족인 노숙인들에게 외롭고 어두운 밤길의 따스한 별빛이 돼 달라”고 부탁했다.
소망교회 청년들은 자정이 넘어 시청역으로 이동했다. 역사 안에 누워있는 노숙자들을 향해 두 손을 내밀고 찬양으로 축복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새로운 희망 시작되도다.’(사랑의 나눔) 노래를 마친 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했다. 그 뒤론 혹시 잠든 이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웬만하면 휴대폰 통화도 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부터 사역에 참여한 송나영(37·여)씨는 “처음엔 노숙자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도 낯설고 무서웠지만 우리가 웃으며 인사했을 때, 이분들의 굳어있던 표정이 풀리는 것을 본 뒤 계속 동참하게 됐다”며 “거리에 계신 분들이 따뜻한 정을 그리워하고 계신다는 걸 느꼈다”고 전했다.
“5년째 이 바지를 입고 있는데 찢어져서 더 이상은 입기가 힘들 것 같아요.” 한 노숙인이 호소하자 이 팀장이 남자의 치수를 적었다. ‘거리의 천사들’은 물품을 후원받아 노숙인들에게 옷과 신발 등을 지원하는 사역도 하고 있다. 청년들은 노숙인들에게 빠짐없이 음식과 생필품을 나눠준 뒤 큰 봉지에 쓰레기를 담았고, 바닥에 흘린 깍두기 국물을 휴지로 닦았다.
청년들은 지하철역으로 나서기 전 서울 종로구 이화장길에 있는 ‘거리의 천사들’ 사무실에 들러 각자 역할을 나누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거리의 천사들’은 노숙인들에게 주거와 일자리를 마련해줌으로써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비영리 민간단체다. 이 단체를 소개하는 안내지엔 “우리 곁에 연약한 지체를 보내주시는 것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스며들어 있다”며 “이럴 때 누군가 작은 관심과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 준다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날 처음으로 사역에 동참한 백우현(30)씨는 “나눔은 사과 한쪽을 반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 자기가 가진 사과 반쪽 전부를 드리는 것”이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런 나눔을 실천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이용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