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의 박정희 미화여부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
인간은 의미의 존재다. 주지하듯, 인류는 침팬지와 유전자가 98.8% 일치한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특성 가운데 백미는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과 의미의 존재라는 점이다. 인간은 자기 앞의 세계를 보고 의미를 창조하거나 구성하고 이 의미를 따라 결단하고 실천하는 존재다. 인간은 이 의미를 학습하고 전승하면서 생물학적 진화의 수 천, 수 만 배에 이르는 속도로 문명의 진화를 이루었다. 교과서는 이 의미가 압축된 텍스트이자 서로 의미가 충돌할 때 이를 결정하는 가치를 지닌 정전의 위상을 갖는다. 교과서는 국민 전체에 대해 공동의 의미를 형성하여 의미의 판별에 정전의 구실을 하기에 국민의 사고와 실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국정교과서에서 박정희 미화 여부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다. 미화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얼굴의 흉터를 가리듯 추한 것을 은폐하는 경우다. 또 하나는 화장을 하고 성형을 하듯, 추한 것을 분식이나 이데올로기 등을 통해 아름다운 것으로 꾸미는 경우다. 역사적 왜곡 여부는 역사학자의 몫이고, 필자는 기호학자로서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 박정희 시대를 기술한 261-269쪽의 텍스트를 놓고 미화 여부에 대해 분석하였다.
“5.16 군사 정변 주도세력은 … 민정참여에 나섰다.”(261쪽) 표면상으로는 5.16을 비판하여 균형 있게 서술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5.16군사정변이 야기한 수많은 문제점, 곧 민주주의 말살, 대미종속체제 심화, 정격유착, 정보정치, 무엇보다도 32년 간 이어진 군사독재의 지평을 연 사실 등을 은폐하고 있어 마치 민정참여만이 문제였던 것으로 읽게 한다.
“1967년 7월 동베를린 …동백림사건이 있었다.”(263-264쪽) 이어서 동백림 사건의 각주에서 ”1967년 중앙정보부는 유럽에 거주하고 있던 … 발표하였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말을 바꾸었다.”라는 간단한 문장도 문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그 문장 전후에 경마장 운운하면, 이는 “동물인 말을 바꾸어 탔다.”라는 의미다. 장기에 관한 글이 나온다면, “장기의 말을 교체했다.”라는 뜻이며, 대화에 관한 기술이 나온다면 “언술을 바꾸어 말하였다.”라는 뜻을 갖는다. 이처럼 문장의 의미는 문맥에 종속된다. 북한의 대남 침략을 기술하다가 동백림 사건을 언급하면 독자는 북한의 대남 침략과 대응의 일환으로 이 사건을 읽게 된다. 더구나 무고한 학생과 지식인에 대해 고문과 투옥을 일삼은 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에 의해 중앙정보부가 단순 대북접촉과 동조행위 내지 정부비판행위를 간첩죄로 조작한 것으로 밝혀진 점 등 이 사건의 핵심사항을 언급하지 않았다. 동백림 사건은 67년 6.8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학생들을 탄압하고 유신체제로 이어지는 장기집권을 획책하기 위하여 조작된 것이다. 이 문장은 박정희 정권이 학생 및 지식인을 고문하고 투옥하여 인권을 유린하고 독재를 공고히 한 사건을 북한침략에 대한 안보 차원의 대응으로 미화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 정책을 강화하였다.”(264쪽) “계속되는 외교 안보적 위기 … 민방위대도 설치되었다.”(267쪽) 이 대목에서는 핵심은 독재정권 유지를 위한 국가와 학원의 병영화인데 이를 외교 안보의 위기와 반공 정책의 일환으로 미화하고 있다. 이는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한 미화다.
“경제 개발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 노동집약적인 제품이 주를 이루었다.”(264쪽) 대외종속 심화, 정경유착과 부패, 빈부격차 심화, 산업구조의 기형화 등 수출주도의 경제 개발 체제의 어두운 면은 전혀 다루지 않은 채 밝은 면만 부각시켜 미화하고 있다.
“그러나 유신 체제 유지에 이용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268쪽) 새마을 운동의 장점만 기술만 하고 비판은 단 한 문장뿐이다. 농촌공동체의 해체, 전통문화의 파괴, 농촌의 전체주의 체제 편입 등 문제점을 다루지 않았다.
269쪽의 고속 성장의 그늘 항목의 경우 도시빈민 문제, 노동탄압, 산업재해와 환경 문제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어 어느 정도 균형 있는 서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노동자 탄압과 인권유린, 대외종속 심화, 민주주의 말살, 헌법 파괴, 군사독재, 정경유착과 부패 등 더 핵심적인 문제점은 은폐하고 있다.
이처럼 이번 교과서는 잘못을 은폐하거나 분식하는 방법으로 박정희를 미화하고 있다. 교육부는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담았고, 자랑스러운 역사인 민주화와 산업화에 대해 균형있게 서술하였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거의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는다. 핵심적인 문제점은 은폐한 채 지엽적인 문제점만 간단히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교과서가 박근혜 정권의 아버지인 박정희를 미화한 것은 교육을 정치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진리를 왜곡하고 하나의 의미만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적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전면 폐기가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