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가 본격적인 수사 개시에 앞서 출입기자단과 오찬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박 특검과 기자단의 첫 공식 상견례입니다. 이 자리에서 박 특검은 수사와 관련해 다방면에 걸쳐 설명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박근혜 대통령 조사는 완벽한 준비를 해서 가급적 한 번에 끝내겠다고 말했습니다. 박 특검과의 일문일답이 준비돼 있습니다. 참고로 식사 비용은 40여명의 참석자 각자가 ‘더치페이’를 했습니다.
특검팀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주요 수사 대상자들도 무더기로 출국금지했습니다. 필요할 경우 청와대 압수수색에 나서겠다며 강력한 수사 의지를 보였습니다.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와 관련된 법리 검토에도 착수했습니다. 특검 출범 16일째(12월 15일 목요일)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법률 미꾸라지’ ‘미꾸라지 증인’ 등 대거 출금=특검보인 이규철 대변인은 오전 10시 정례브리핑을 했습니다. 일부 조간신문에 보도된 대로 주요 피의자들을 출국금지한 사실도 인정했습니다.
“업무 분담 논란이 있어 명확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특검은 4개 수사팀, 수사지원단(어제 표현은 수사지원팀) 및 사무국으로 구성될 예정입니다. 각 수사팀은 특검의 지시를 받은 특검보들이 지휘하기로 계획돼 있으나 한 명의 특검보(이규철)가 대변인과 수사총괄을 맡은 관계로 윤석열 검사가 1개팀을 지휘할 예정입니다. 각 팀 담당업무 및 수사검사들은 일응 특정돼 있으나 탄력적으로 운영할 예정입니다. 수사 공정성 신뢰성 및 수사 편의를 위해 공개는 안할 예정임을 다시 한번 강조드립니다.”
“출국금지와 관련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특검은 수사 준비 기간 중에도 출국금지 등의 조치를 할 수 있으므로 기록 검토에 따라 필요한 사항은 모두 조치하고 있습니다.” “기록 검토 진행 상황과 관련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수사 기록 검토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상당부분 진행됐습니다. 검토가 끝난 후 팀별 논의를 거쳐 본격 수사를 개시할 예정입니다.”
오늘의 초점은 출국금지(출금) 대상자였습니다. 우선 직권남용 의혹을 받고 있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출국이 금지됐습니다. 직무유기 혐의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미 검찰 수사 단계에서 출금 조치를 받은 상태입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법률 미꾸라지’(김기춘), ‘법률 뱀장어’(우병우)라고 독설을 퍼부은 바 있는데 이들이 ‘한반도’에 갇힌 것입니다. 특히 잠적 중인 우병우 수석이 소환에 불응할 경우 체포영장을 발부받겠다는 게 특검팀의 입장입니다.
‘비선 진료’ 의혹을 사고 있는 김영재 성형외과 원장과 박 대통령 자문의를 지낸 김상만 전 차움의원 원장 등도 출금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보안손님’으로 청와대를 무단출입한 ‘비선 의사’들로,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요리조리 빠져나가려다 위증 여부를 추궁당한 사람들입니다.
# 대변인과 기자들의 ‘스무고개’=이 대변인은 수사상 필요한 사람 여러 명에 대해 출금을 한 사실을 인정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출금 대상자가 누구인지 개별적인 확인은 불가능하다며 손을 내저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변인과 기자들은 ‘스무고개’를 하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출금) 하긴 했다는 건가.
“그렇다. 필요한 조치는 다 했다.”
-몇 명?
“숫자 말씀드리기 어렵다.”
-다섯명 이하?
“그건 곤란하다.”
-그걸 특검에서 했다는 건가.
“예.”
-언제 조치?
“말씀드리기 어렵다.”
-한 명? 여러 명?
“한 명은 아니다.”
# 청와대 관저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는?=이 대변인은 수사 착수 시점에 대해 “아직 확정돼 있지 않지만 법상 준비기간이 20일이기 때문에 20일 종료되는 그 무렵에 개시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경우 다음주 화요일(20일) 전후가 됩니다.
4개 수사팀 중 1개팀을 지휘할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와 관련해 애당초 그를 수사팀장으로 한 것은 특검보 준하는 역할을 맡기기 위해서였나라는 질문에는 “윤 검사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그것을 예상했다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적절히 배치를 한 것으로 판단해달라”고 답했습니다.
박 대통령 대면조사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불응한 것과 관련해 “그 부분까지 감안해서 여러 가지 상황을 다 고려해서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강제수사 대상에 청와대 관저도 포함됐다고 봐야 하느냐는 물음에는 “수사 과정상 필요한 모든 조치는 다 할 예정이다. 따라서 청와대든 어디든 간에 만약 수사에 필요하다면 그 방법도 강구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특검팀 관계자는 전례가 없어 청와대 압수수색이 가능한지, 청와대가 거부할 경우 어떻게 되는지 법리를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대변인은 국회 청문회 일부 증인들의 위증 논란에 대해서는 “그 부분을 상당히 심도있게 지켜보고 있고 필요하다면 수사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대통령 조사 입장 밝힌 박영수 특검=박 특검은 특검 기자단 소속 40개 언론사 대표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장소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 인근 중식당입니다. 낮 12시부터 50분가량 함께했습니다. 특검팀에서는 박충근 이용복 양재식 이규철 특검보와 수사지원단장도 참석했습니다.
이번 수사에 임하는 박 특검의 의지는 대단했습니다. “함께 고생하며 좋은 수사 결과가 나와 국민이 하루빨리 ‘최순실 늪’에서 벗어나길 노력해달라. 저도 노력하겠다”고 기자들에게 당부했습니다.
박 특검의 발언을 들어보겠습니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독일 체류)는?
“정유라를 귀국시키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물론 자진해서 오는 게 최고다.”(특검은 독일과의 수사 공조 등을 위해 독일어를 하고 독일사법체계에 정통한 변호사 1명을 특별수사관으로 채용했습니다)
-정유라에 뭘 물어보나.
“우선 이화여대 부정입학, 그리고 삼성 지원한 것도 있고, 생활관계도 물어보고.”
-현판식 날짜는?
“다음주 월·화·수 중 하려고 한다. 수사 준비기간에 충분한 검토를 해서 수사에 착수하면 바로 피의자, 참고인 조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은 것이 효과적이다.”
-어느 수사에 우선순위를 두나.
“그건 지금 얘기할 수가 없다. 하여튼 수사를 한 방향으로만은 안 할 거다.”
-청문회에서 새롭게 제기된 의혹은 다 보는가. 오늘 ‘청와대의 대법원장 사찰’ 의혹이 제기됐는데.
“청문회에서 나오는 것은 원칙적으로 참고해야지.”
-국회 청문회에서 이화여대 총장이 딴소리 하는데.
“누가 정유라를 부정입학시킨 건가. 그래도 교육자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특검이 청문회를 다 보고 있는데.
“저 사람이 저렇게 진술하는 게 맞나. 아주 뻔한 걸 위증한단 말이야.”
-특검 수사 결론과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론이 다르면 혼란 있을 수 있는데.
“우리도 법을 하는 사람이고 저쪽(헌법재판소)도 법을 하는데 그렇지 않을 거다. 큰 차이 없을 거다. 결국 법률가는 확정된 팩트에 대해 법률로 판단하는 것이다.”
-검찰 수사가 잘됐다 싶으면 굳이 다시 안하나.
“그렇다. 그런데 상황이 계속 변하니까. 어제 (청문회에서) 최순실 녹음한 거 들어보니 그런 팩트가 나오면 조사 안 할 수 없다.”
-다음주 수사 들어가면 최순실 바로 오겠네.
“바로 올지는 모르겠다. 최순실은 중요한 사람이니 몇 번 올 거다.”
-‘정호성 녹음파일’에 실제로 좀 심각한 내용 있나.
“그게 앞으로 걱정이다. 이거 공개 문제가, 마음 같아선 얘기해주고 싶은데. 내용에 관한 건 공개하는 것이 금기사항이다.”
-대통령 조사 언제 할지 관심이다.
“대통령 조사 두 번, 세 번 할 수는 없잖아. 하더라도 최대한 한 번에 끝내야지. 최대로 해도 두 번 정도. 그러려면 완벽한 준비를 해야지. 완벽히 준비한 다음에 하겠지.”
-대통령 (특검 사무실로) 부를 일은?
“대통령이 여기로 오는 것은 경호상 문제가 많다. 그래도 대통령 예우를 지켜야 한다.”(이 말은 청와대 또는 제3의 장소에서의 방문조사를 시사하는 것입니다)
# 오찬 비용은 ‘더치페이’=오찬 참석자는 기자 40명, 특검팀 6명 등입니다. 식사 메뉴는 짜장면, 짬뽕, 볶음밥 중 하나였습니다. 박 특검은 짬뽕을 주문했습니다. 5개 테이블에 탕수육도 하나씩 올라갔습니다.
간담회를 마친 뒤 식사 비용은 ‘김영란법(청탁금지법)’에 따라 각자 계산했습니다. 1인당 1만3902원씩 지불했습니다. 40여명이 계산대 앞에서 길게 줄지어 밥값을 일일이 계산하는 데 20분 이상 걸렸습니다. 식당 주인은 난감해 했습니다. “아니, 영업시간에 이러면 어떻게 합니까. 이건 영업방해입니다.” 진풍경이었습니다.
박정태 선임기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