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상근병의 무모한 음주운전이 단란한 가정을 꾸려온 50대 환경미화원 가장의 삶을 무참히 짓밟았다. 부부 농아(聾啞)로 두 아들과 성실하게 살아온 안모(56)씨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불행이 닥친 것은 스산한 바람이 겨울을 재촉하던 15일 새벽.
이날 광주 북구 운암고가 밑 2차선 일방도로에서 쓰레기 수거작업에 몰두해 있던 안씨를 육군 모 사단 상근병 조모(21)상병이 몰던 승용차가 덮친 것이다.
이 사고로 안씨 승용차와 주변에 있던 2.5t 쓰레기 수거차량 사이에 몸이 끼게 된 안씨는 출동한 119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숨졌다. 사고 당시 조 상병의 혈중알코올농도는 운전면허 취소 기준 0.1%보다 훨씬 높은 0.146%로 만취상태였다.
조 상병은 밤새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신 뒤 만취 상태에서 군복으로 갈아입고 출근을 하기 위해 음주운전으로 승용차를 몰면서 귀가하던 중이었다.
숨진 안씨는 선천성 청각장애인으로 광주 북구청 쓰레기 위탁업체인 ㈜금강공사에 1991년 4월 장애인 특채를 통해 입사했다. 이후 25년 넘게 북구 관내 쓰레기 수거업무를 맡아왔으며 수년전부터 운암고가도~북광주세무서 구간을 전담해왔다.
운암동 주민들은 “날마다 동이 트기 이전인 오전 5시~6시쯤 출근해 오후 3시까지 지저분한 쓰레기를 수거했지만 인상을 찡그리지 않고 항상 밝은 표정이었다”며 “동네주민들에게 먼저 눈인사를 건내 농아인줄 잘 몰랐다”고 전했다.
안씨가 소속된 금강공사 김환국 사장은 “선천적으로 귀가 어두워 어릴 때부터 어눌한 말투를 하고 직장 동료들과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웃는 얼굴로 쓰레기 수거업무에 소홀함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부부 금슬과 형제 간의 우애도 좋아 퇴근시간이면 부인이 이따금 마중을 나오고 회사에 무슨 일이 생기면 공무원인 형이 대신해 상담을 하기도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안씨의 직장동료들도 “안씨는 농아 부부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이 정상적으로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 두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전남도청에 근무하는 공무원 형에게 양육을 맡겼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동안 언어소통의 불편에도 결근을 한 번도 하지 않을 만큼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안씨에게 불행이 닥쳐 믿기지 않는다”고 애도를 표했다.
형을 통한 위탁 양육은 청각장애를 앓는 부모가 말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면 어린 아이들도 언어를 제 때 습득하기가 힘들다고 판단해서다.
가족간 생이별이라는 안씨의 눈물겨운 배려로 성장한 두 아들 중 큰 아들은 모 기업 인턴사원으로 취업했고 둘째 아들은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교 3학년에 복학한 상태다. 안씨는 북구청장 추천을 받아 이달 말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으로부터 ‘모범 근로자’ 표창을 받을 예정이었다.
군 헌병대는 조 상병의 신병을 인계받아 구체적 사고 경위와 부대 상근병들의 근무관리 실태를 조사 중이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무모한 음주운전이 빚은 50대 환경미화원 가장의 비극
입력 2016-12-15 15:28 수정 2016-12-15 1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