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민심을 확인하고도 감히 그런 말을 하느냐고 타박할지 모르지만 역설적으로 일리 있는 말이기도 하다. 바로 민의를 결집시키고 국론을 통일시키는 데 크게 일조했다는 것이다.
촛불 집회에 수많은 인파들이 운집했으니 비교적 적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언론들이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한 걸 봐도 박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이 ‘민심을 하나로 결집시켰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번에는 진경준 전 검사장의 뇌물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가 ‘여론을 통일’시키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진 전 검사장이 김정주 넥슨 회장으로부터 공짜로 받은 넥슨 주식과 차량, 여행 경비 등은 뇌물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검사의 막강한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돈 없고 빽 없는’ 서민 입장에서는 재판부의 판결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김 회장이 진 전 검사장에게 비상장주식(4억2500만원), 제네시스 차량(4950만원), 각종 해외여행 경비(약 5000만원) 등을 준 것이 ‘뇌물이냐, 아니냐’ 하는 점이었다. 진 전 검사장은 공짜로 받은 주식으로 126억원의 대박을 터뜨렸다.
먼저 재판부의 판결 내용을 살펴보자. 재판부는 “뇌물죄를 의심할 만한 사정은 존재한다”면서도 “그러나 진 전 검사장이 김 회장에게서 금품을 받은 10여년 동안 직무와 관련된 현안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직무 관련성·대가성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은 일반적인 친한 친구 사이를 넘어 서로 지음(知音)의 관계에 있다고 보인다”며 “두 사람의 관계와 김 회장이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음은 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거문고의 명인 백아가 자기의 소리를 잘 이해해 준 벗 종자기가 죽자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재판부의 무죄 판단은 김 회장의 진술 취지와 동떨어진다. 김 회장은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금품을 공짜로 준 데 대해 “친한 친구 사이이기는 하지만 검사이기 때문에 준 점을 부인할 수는 없고, 나중에 형사사건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줬다”고 진술했다. 김 회장은 “(진 전 검사장이 주식매입자금을 갚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사라서 돌려달라고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진 전 검사장에게 이런저런 금품 등을 제공할 당시 진 전 검사장은 법무부 검찰국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 등으로 재직했다. 법무무 검찰국은 검찰 사무와 검사 인사를 담당하기 때문에 일반 검사보다 검찰국 소속 검사의 직무 연관성을 더 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법조계는 지적한다.
진 전 검사장이 뇌물 혐의에 대해 무죄 선고를 받음에 따라 검찰이 구형한 130억원대 추징금도 일단 집행할 수 없게 됐다. 다만 재판부는 진 전 검사장이 한진그룹 내사 사건을 종결하는 대가로 자신의 처남 회사가 대한항공의 청소 용역사업을 따낼 수 있도록 한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보수·진보 언론은 한목소리로 재판부를 성토하고 나섰다.
국민일보는 “진경준 ‘120억대 공짜 주식’이 뇌물 아닌 선물?”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대가성이 없다는 1심 무죄 판결은 뇌물죄 법리(法理)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는 취지로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진경준의 ‘공짜주식’ 무죄 선고 납득 안 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고위 공무원의 뇌물수수 사건 때 포괄적 뇌물죄를 인정한 판례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대법원은 1997년 4월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 당시 포괄적 뇌물죄 판례를 처음으로 확립했다. ‘뇌물은 공여되거나 수수된 것으로 족하고, 개개의 직무 행위와 대가적 관계에 있을 필요가 없으며, 그 직무가 특정된 것일 필요도 없다’고 정의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3만원 식사’도 처벌대상인데…‘진경준 126억 주식’은 뇌물 아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재판부가 진씨에게 ‘징역 4년’ 실형을 선고하기는 했지만 ‘주식 뇌물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을 두고 법조계에선 ‘뇌물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진경준 ‘넥슨 공짜 주식’ 무죄 판결, 국민이 납득하겠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전두환 노태우 비자금 사건 당시 대법원은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적용할 때는 대가 관계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필요가 없다며 ‘포괄적 뇌물죄’ 판례를 정립했다. 신재민 전 문화체육부 차관이 뇌물죄로 3년 6개월을 선고받았을 때도 법원은 그가 법률안을 심의하는 차관회의 참석자라는 이유로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을 인정했다. 기업에서 뒷돈을 받은 김광준 전 부장검사에게도 뇌물죄가 적용됐다. 이에 비춰 보면 법원이 진 전 검사장의 경우 직무의 범위를 너무 좁게 해석했다는 의구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진경준 1심 4년형…넥슨 주식 뇌물 혐의는 ‘무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법원이 검사의 직무범위를 너무 좁게 해석해 부패척결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외면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고 비난했다.
경향신문은 “진경준에 4년형, 한상균에 3년형이 사법정의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검사직을 수백억원대 부정축재 수단으로 활용하고도 계속되는 거짓 해명으로 시민들의 공분을 샀던 점에 비하면 형량이 너무 낮다”면서 “비리 고위 공직자에게는 관용을 베풀고, 부당한 정책에 항의한 이에게는 엄벌을 내리는 판결로는 사법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한겨레는 “진경준 130억 주식 대박이 ‘무죄’라는 법원” “‘보험 차원 줬다’ 진술 있는데도…‘뇌물죄’ 외면”이라는 제목의 기사 두 건을 통해 재판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겨레는 “뇌물죄는 공여자의 진술이 핵심 증거가 되는데, 김씨는 향후 사건 관련 도움을 받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돈을 줬다고 했다. 직무 관련성을 입증하는 근거가 나왔는데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한 데 의문이 든다”고 비판했다.
진 전 검사장의 뇌물 혐의에 대한 무죄 판결은 대법원 판례, 금품 공여자의 진술,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국민 염원 등을 감안할 때 '이상한 판결'임이 분명해 보인다. 검찰은 증거를 보강해 2심 재판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2심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와 금품을 준 김 회장의 발언 등을 근거로 진 전 검사장에게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사법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
염성덕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