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광장서 함께 분노하고 아파해야” 김기석 청파감리교회 목사

입력 2016-12-14 17:24
‘우리 시대의 욥은 누구일까.’ 김기석(61) 목사가 최근 낸 욥기 묵상집 ‘아! 욥’(꽃자리)은 이런 질문으로 시작된다.

욥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8일 김 목사가 20년째 담임하고 있는 서울 용산구 청파로 청파감리교회를 찾았다. 시집, 신학서적, 인문학 단행본 등 여러 가지 책이 집무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는 방문자를 위해 직접 물을 끓였다. 이내 탁자 위에는 겨우살이 차가 놓였다.


조금 피곤해 보였다. “감기 기운이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 나가서 밤에 돌아와서 그런가 봐요.” 김 목사는 희미하게 웃었다. “어느 시대든지 ‘욥’이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삶이 버거운 짐처럼 느껴지는 사람들, 영문 모를 시련으로 피폐해진 사람들, 꿈조차 저당 잡힌 사람들…. 이들의 고통을 묵상해보고 싶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후 고통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욥기를 펼친 이유였다. 그는 이 책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우리 시대의 욥’이라고 표현했다. “이 시대에는 세월호 참사를 제쳐두고선 진지한 신학적 사고가 불가능합니다. 유가족들은 처절한 고통과 분노를 기름 삼아 이 세상을 밝히기 위해 분투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혼란도 그 고통과 무관하지 않고요. 욥기가 고통의 이유를 알려 주는 건 아니지만 고통의 자리에 서보는 걸 도와줄 순 있어요.”

저자는 욥기를 인문학적 프리즘에 투과시킨다. 목회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그는 시인 기형도, 철학자 칸트, 소설가 쿤데라, 신학자 틸리히 등 90여명의 작품을 ‘아! 욥’에 인용한다. 욥기의 주제를 ‘무고한 자의 고난과 하나님의 정의’라고만 이해해온 이들에게 다의적 해석의 스펙트럼을 제공한다.

“스스로 믿음이 좋다고 여기는 이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누군가의 불행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말이 대표적인 표현이죠. 이 말은 때로 상처받은 이들에게 폭력이 됩니다. 엘리바스 등 친구들의 충고가 욥에게 더 큰 고통만 안겨준 것처럼. 어쩌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고난의 이유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살아갈 이유를 찾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김 목사는 교인 100여명과 함께 교회 깃발을 들고 6차례 집회에 모두 참여했다. 촛불집회 참여는 무엇을 뜻할까. “시대의 고통에 참여하는 것이죠. 욥처럼 고통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 경이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광장에서 꿨던 꿈이 이루어지리라 낙관할 순 없지만 불의한 카르텔에 도전할 용기는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교인들이 광장에서 보인 연대의식을 일상에서도 보여주길 바란다. “진정한 혁명은 광장의 열정이 식은 이튿날 일상 속에서 시작돼야 합니다. 광장에서 만난 그 사람들과는 음식도 나눠먹고 포옹도 하지만 이튿날 출근길 전철에서는 그들에게 짜증을 냅니다. 광장은 우리의 꿈을 잠시 보여줬고, 그 꿈을 이루려면 삶이 변해야 합니다.” 그의 어조는 부드러웠지만 그 말은 날카로웠다.

교회의 역할을 묻자 독일교회 이야기를 꺼냈다. “독일 라이프치히의 니콜라이교회는 1980년대 초부터 평화와 통일을 위한 촛불기도회를 열었고, 베를린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교회 공간을 모든 사람에게 개방했어요. 통일 후 이 기도회 기념물이 교회 앞 광장에 세워졌죠. 이 기념물의 위치가 교회가 있어야할 곳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욥기는 우리에게 정답 없는 삶을 살아낼 용기가 있는지 묻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조그마한 삶의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광장에서 함께 분노하고 아파해야 합니다.”

분노와 고통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1시간가량의 대화 후 내방객을 교회 입구까지 배웅했다. 돌아본 교회 창문에는 예수를 경배하러 왔던 동방박사들의 하얀 실루엣이 그려져 있었다. “저희는 성탄절 장식을 단순하게 합니다.” ‘광장에 선 교회’를 지향하는 그의 선명한 목회관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청파감리교회는 5년 새 교인이 650여명으로 약 2배 늘어났다. 주로 교회를 떠나 방황하던 가나안 교인이라고 한다.

강주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