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충무로를 대표하는 세 배우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의 만남. 둘째, 사회 비리를 까발리고 정의(正義)를 좇는 의지적인 이야기. 셋째, 제작비 100억원을 들인 화려한 볼거리와 긴장감 있는 연출. 얼핏 봐도 답은 나온다. 영화 ‘마스터’의 흥행을 점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12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CGV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첫 선을 보인 ‘마스터’는 익숙하지만 흥미로운 스토리를 펼쳐보였다. 조 단위 사기를 치는 희대의 사기꾼 진현필(이병헌)과 부정(不正) 바로잡으려는 올곧은 형사 김재명(강동원)의 치밀한 두뇌싸움. 둘 사이를 오가며 스파이 역할을 하는 천재 해커 박장군(김우빈)이 긴장을 한껏 조인다.
범죄자와 형사의 대결은 더 이상 새로운 소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묘하게 관객을 끌어당기는 힘을 갖는다. ‘뒤가 구린’ 권력자들을 향한 은근한 경멸. 그 답답함을 끝내 해소시켜주는 통쾌함이 있다. 사회비판적인 내용을 적절한 선에서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배우들의 공이 컸다. 저마다 다른 색깔을 띤 연기의 합은 이 영화를 오색찬란하게 만들었다. ‘연기의 마스터’로 불리는 이병헌은 명불허전의 연기력을 선보였다. 생애 첫 형사 역을 맡은 강동원은 진중함을 유지하며 작품에 무게를 더했다. 엄지원 진경 오달수 등도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화룡점정은 김우빈.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그의 능청 연기와 능수능란한 조율이 작품을 살아 숨 쉬게 했다.
시사회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우빈은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 장군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할지 궁금했다. 그때의 제 느낌을 관객과 함께 호흡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며 “흐름이 끊이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살아있는 느낌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병헌 강동원 가운데 누구와 붙더라도 찰떡같은 ‘케미’를 완성해낸다. 브로맨스 비결을 묻는 질문에 돌아온 건 과연 그다운 답변이었다. 김우빈은 “현장에서 선배님들이 주신 에너지를 받아서 리액션을 했을 뿐”이라며 “감독님이 예쁘게 잡아주셔서 더 어울려 보였던 것 같다”고 겸손해했다.
비열한 사기꾼의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한 이병헌은 “참담하게도 제가 참고할만한 분들이 많은 세상이지 않나. 그런 인간들의 생각이 어떨지 나름 연구했다. 물론 온전히 설득될 순 없었다. 감독과 긴 이야기를 나눈 끝에 ‘그들은 생각 구조 자체가 다를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선(善)을 좇는 김재명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한편으로는 판타지적으로 느껴지는 인물이다. 강동원은 “이런 사람이 한 명쯤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출발했다”며 “그를 통해 (관객이) 조금이라도 대리만족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시길 바랐다”고 했다.
암울한 현 시국과 겹쳐 보이는 부분이 적지 않다. 조의석 감독은 “특정 사건을 참고했다기보다 기업인이 정치인에게 상납하는 로비 장부가 있고, 적발되면 해외로 도피하고, 붙잡혀도 사면이 되는 등 반복되는 일련의 문제들을 녹여내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현 시국을 참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건 2년 반~3년 전이에요. 그땐 이런 일이 생길 줄 꿈에도 몰랐죠. 다행히 최근 국민 여러분의 힘으로 뭔가 이루어내는, 어떻게 보면 저희 영화보다 더 통쾌한 현실이 벌어지는 걸 보면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기뻤습니다.”
“현실이 더 환상적인 것 같아 제가 기획을 잘못했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너스레를 떤 조의석 감독은 “김재명 캐릭터를 통해 이런 ‘미친놈’ 한 명으로 인해 (선한 영향력이) 점점 퍼져나가는 세상을 꿈꿨다. 그걸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신 국민들이 이 영화를 보면 더욱 재미있게 보실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가슴 아프고 힘든 시기에 ‘마스터’가 조금이나마 즐거움과 위안을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오달수는 어수선한 시국에 주춤해진 극장가 상황을 염려하는 마음을 재치 있게 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배우 아닌 사람들의 막장 드라마로 (시끄러웠죠). 이제 그보다는 진짜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와 드라마를 많이 사랑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