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안팎에서 ‘왕수석’으로 통하던 안종범(구속기소)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대면 대신 전화로 닦달했다는 정황이 나왔다.
12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안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대면 대신 전화로 지시사항을 전달하면서 “깨알같이 쓰라”고 지시했다. 두서없는 지시를 정신없이 받아 적고 있는 안 전 수석에게 박 대통령은 “쓰고 있느냐”며 재차 메모할 것을 채근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2005년에는 경제 자문, 2007년부터는 박 대통령 경제 과외교사였던 안 전 정책수석도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의 장막에 가로막혀 대통령을 직접 마주한 상태에서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자리는 극히 드물었을 것이라고 매체는 전했다.
지난 11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에 따르면 안 전 수석은 이런 ‘전화통화 받아쓰기’를 통해 2015년 1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510쪽 분량의 수첩 17권을 남겼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여기에는 대통령을 지칭하는 'VIP'라는 표기와 함께 지시사항이 꼼꼼하게 기록됐다. 또한 수첩의 상당 부분은 급하게 휘갈겨 쓰느라 알아보기 힘들 정도인 반면 일부 내용은 또박또박 잘 적어놓았다. 이에 대해 안 전 수석은 검찰조사에서 “헐레벌떡 쓴 내용을 정리해서 다시 쓴 것”이라고 진술했다.
또한 안 전 수석의 수첩에는 박 대통령이 미르와 K스포츠 재단 관련 의혹을 은폐하기 위해서 거짓 증언을 지시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안 전 수석은 K스포츠와 미르 재단과 관련된 각종 의혹이 터져 나오던 지난 10월 중순, 박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하며 수첩에 ‘전경련 주도 O, 청와대 관여 X’라는 지시사항을 적었다. 해당 메모에는 ‘강제모금이 아니었고 청와대가 재단 인사에도 관여하지 않았으며 청와대는 주도하지 않고 협의만 했다고 말하라’ 구체적인 지시도 포함돼 있었다고 12일 SBS가 보도했다.
안 전 수석은 지난 10월 2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실제로 박 대통령이 지시한 대로 증언했다. 하지만 이후 안 수석은 검찰 조사에서 강제모금이 아니라는 것 말고는 다른 내용은 대통령이 잘못된 지시를 한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네티즌들은 “역시 수첩공주 답다”며 “쓰라고 해서 수첩에 써뒀는데 결국 뿌린 대로 거두었다”는 반응이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