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구호 단체인 ‘조선의 그리스도인 벗들’ 설립자인 앤드류 린튼(59·사진)이 아도 디엔 유엔세계식량계획(WFP) 서아프리카 본부장에게 빈민국 구호에 대한 ‘훈수’를 뒀다.
린튼은 12일 대전 한남대를 찾은 디엔 본부장에게 이메일 편지를 통해 “저희 가족은 1895년 처음 한국을 찾았다. 당시 한국은 절대 빈곤으로 발전이 미비한 상태였다”며 “저희 증조 부모와 조부모, 부모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동기부여를 받았다. 한국인과 공유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며 완성된 사역”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예수는 믿음으로 그를 영접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선물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한남대 설립자 윌리엄 린튼(1891~1960) 선교사의 손자인 린튼은 이날 한남대 설립자 가족의 일원으로 편지를 썼다.
린튼의 편지에는 기독교 색채가 많이 담겼다. 유엔 정책상 종교색을 지양하고 디엔 본부장이 이슬람 신도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날 편지의 전달은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게 한남대 측의 설명이다.
린튼은 편지에서 “한국은 당시 많은 도움을 필요로 했다. 음식과 깨끗한 물, 글을 쓰고 읽을 줄 아는 능력과 교육, 진료, 자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저희 가족은 이 지역의 긍정적인 변화를 위한 많은 필요한 것들을 공급했다. 교회와 학교, 신학대, 진료소 등 여러 가지를 설립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로 한국은 활기차게 번영하고 민주적인 사회로 변화됐다. 그리고 이제 한국인들은 강력한 손길로 세계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린튼은 “당신과 서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겠다. 이런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것이고 예수님을 통해 용서와 선물을 주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디엔 본부장은 이날 오전 외교부, 오후엔 한남대 글로벌비지니스스쿨 강연과 국회 방문 후 곧바로 출국했다.
방한 목적은 전 세계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서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국제적 관심의 제고와 내년 4월 한남대에서 열리는 ‘모의 유엔 WFP' 개최 때문이다.
디엔 본부장은 인사말에서 “120년 동안 한국 땅에서 이어진 린튼 가의 헌신과 정신을 기억하겠다. 크게 발전한 한국의 모습에 놀랐고 환영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린튼 가(家)는 120년간 4대에 걸쳐 한국사랑을 이어오고 있다. 조지아 공대를 수석 졸업한 윌리엄 린튼 선교사는 1912년 21세 때 이 땅에 와 48년간 교육 및 선교에 헌신했다.
1919년 3·1운동을 목격한 뒤 그해 8월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미국 평신도 대회에 실상을 알렸다. 전주의 신흥학교와 기전학교, 한남대를 설립해 민족교육에 발 벗고 나섰다.
6·25전쟁 때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을 떠났지만 그는 전주에 남아 성경학교를 운영했다. 그의 장인은 1895년 한국에 와서 광주 수피아여고 등을 설립한 유진 벨(1868∼1925)선교사다.
후손들도 한국과 인연을 이어갔다. 윌리엄 린튼의 셋째 아들 휴 린튼(인휴)은 6·25 참전용사이고, 전남 순천에 결핵진료소와 요양원을 세워 의료선교 활동을 했다. 휴 린튼의 아들 스티브 린튼(인세반)은 1989년 ‘남북한 윤리 및 도덕교과서’를 비교·연구해 컬럼비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 유진벨 재단을 설립해 결핵퇴치에 앞장섰다.
윌리엄 린튼 선교사의 손자인 존 린튼(한국명 인요한)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으로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해 잘 알려져 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