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의 실체가 드러난 데에는 국회의원과 보좌관, 언론 외에도 실태를 고발한 제보자들의 용기가 큰 역할을 했다. 여명숙 게임물관리위원장은 그 중에서도 국가정보원의 개입 의혹을 드러낸 몇 안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 소통관 살려야죠.”
여 위원장은 국회 최순실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7일) 출석 여부를 묻는 국민일보에 이렇게 문자메시지로 답했다. ‘그 소통관’은 이른 바 국정원의 문화소통관을 일컫는다. 해당 소통관은 여 위원장이 제보한 문화창조융합본부 내 부조리를 국정원에 보고했다가 아프리카 내전 지역으로 보복조치 된 정황이 드러났다. 문화창조융합본부는 ‘차은택 사단’이 권력을 잡고 막대한 전횡을 휘둘렀던 기관 중 하나다.
그는 7일 청문회에서도 이 같은 의혹을 고스란히 증언했다. 이어 “재갈을 물려서 일을 못하는 시스템은 그만 돼야 한다. 이제 알아서 재갈을 뱉어도 될 시기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울분을 삼켰던 공직사회를 대변하는 말, 그러나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발언이다.
청문회가 끝나고 자정 즈음 여 위원장을 국회 뒤편에서 만났다. 소신 발언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러다 PC방 아르바이트도 못할 것 같아 겁부터 난다”는 답이 돌아왔다. 게임물관리위원장직에서 쫓겨나면 역시 아예 게임업계에서 퇴출될 것 같다는 농담 섞인 걱정이다. 그는 지난 4월 문화창조융합본부장 임명 한 달 여 만에 제보를 구실 삼아 한 차례 해고당한 경험도 있다.
그는 하지만 상기된 얼굴에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그래도 ‘부조리’는 참으면 안 되며, 해당 소통관이 돌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조리를 막기 위해 용기를 낸 소통관을 보호하기 위해 여 위원장도 두 번째 해고를 각오하고 용기를 낸 셈이다.
국민일보는 지난 6일 ‘국정원 최순실 정보 묵살’ 및 ‘최순실 비선 의혹 국정원 TK 3인방 좌천될 듯’ 패키지 보도에 앞서 5일 여 위원장과 접촉했었다. 그는 사정상 협조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보냈었다. 하지만 청문회 날 헤어진 후 훗날을 기약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자 이번엔 이렇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넵! 방가! 잘 쉬셈!”
새벽 1시가 넘은 시간 그는 어쩌면 홀가분했을 것이고, 어쩌면 심경이 복잡했을 지 모른다. 그는 좌천된 소통관을 위해 홀로 나섰지만 앞으론 사회가 이를 대신하고 그들을 지켜줘야 할 것이다. 조직논리를 내세워 용기있는 개인에게 보복하고 짐을 지우는 것을 우리는 너무 많이 목격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