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호성 녹음파일 들어봤다”?=박 특검은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동 법무법인 ‘강남’ 사무실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정호성(47·구속기소)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녹취록도 분석 중인가라는 질문에 “네”라고 짧게 답했습니다. 들어봤느냐는 질문에도 “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들어본 소감을 묻자 그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습니다.
정 전 비서관 녹음파일은 이번 사건의 핵심적인 증거물입니다. 검찰이 지난 10월 29일 정 전 비서관 자택을 압수수색했을 때 확보한 휴대전화 통화 녹음파일입니다. 정 전 비서관이 최순실(60·구속기소)씨, 박근혜 대통령 등과 대화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정 전 비서관은 대화 내용을 자동 녹음 애플리케이션으로 녹음해 놨죠. 일각에선 “녹음파일이 10초만 공개돼도 촛불은 횃불이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이 얘기가 급속히 확산되자 검찰은 “관련 보도가 너무 나갔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한 바 있습니다.
박 특검의 발언 직후 일부 언론은 인터넷을 통해 ‘박 특검, 정호성 녹음파일 들어봤다’는 식의 제목을 달아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박 특검의 이 말은 조금 뒤 특검팀 대변인 브리핑 때 부정됩니다.
# “검찰 증거물 아직 확보되지 않았다”=이규철 대변인(특검보)은 오전 10시 브리핑을 했습니다. 박 특검과 박충근 이용복 양재식 이규철 특검보 4명이 지휘부 첫 회의를 했다는 내용으로 시작했습니다. 발표 내용은 이렇습니다.
“오늘은 처음으로 특검보 회의를 했습니다. 특검보 회의를 한 이유는, 현재까지의 준비 상황을 체크하고 앞으로의 수사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서 회의를 했습니다. 준비 상황 중에서는 사무실 임차, 그리고 파견검사 등의 인력 확보 문제와 마지막으로 기록 검토 등 수사 준비 상황 체크했습니다. 오늘은 간략하게 논의했고요. 그리고 궁금해 하시는 것처럼 파견검사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 파견을 요청해놓은 10명 부분이 아직 정확하게 (법무부로부터) 통보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마 오늘 중으로 연락이 오게 되면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기록 검토에 착수할 수 있을 거라고 사료됩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특검, 정호성 녹음파일 분석 착수했다’는 제목의 오늘자 중앙일보 기사에 대해 해명을 하면서 다소간의 혼선이 이어집니다. 중앙일보는 특검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특검팀이 검찰로부터 수사기록에 이어 증거 자료도 인수하고 곧바로 증거물 분석에 나설 계획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중앙일보 관련해서 정호성 녹취파일과 안종범(57·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다이어리, 최순실 태블릿PC 부분 같은 증거물은 아직 우리 사무실이 완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분은 확보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이 됐습니다.” 이 대변인이 중앙일보 보도가 사실이 아니며 박 특검의 발언도 잘못됐다고 확인해준 겁니다.
“박 특검이 ‘정호성 녹취’ 들으셨다고 하는데”라는 취재진 질문에는 “제가 확인해본 결과, 수사팀에서 정식으로 인계를 받지 않았다”며 거듭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 “녹음파일 자체는 없지만 녹취록은 있다”=하지만 오후 들어 반전이 이뤄집니다. 이 대변인이 취재진을 다시 만나 오전 브리핑을 일부 수정합니다.
“수사팀에 확인한 결과 정호성 녹음파일은 증거물 인수 관계로 넘겨받지 못했으나 다만 인계 받은 기록 속에 녹음파일에 관한 녹취록이 있었습니다. 수사팀이 보고 있습니다.” 오전 상황 설명 중에서 반은 맞고 반은 틀렸던 것입니다.
이 대변인은 박 특검이 녹취록을 봤는지를 묻는 취재진에게 “못 봤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박 특검은 왜 ‘들어봤다’고 했을까요. 기자들과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질문을 잘못 알아들었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작은 혼선’이라도 최소화해야 합니다. 온 국민이 특검팀을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이 대변인은 오후 6시30분쯤 취재진을 세 번째 만났습니다. 정 전 비서관 녹취록의 일부 내용을 설명했습니다. 최씨의 국정개입 사실이 드러났느냐는 질문에 “두 사람 사이의 통화 녹취록을 일부 확인한 결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와 국무회의 관련해 통화 내용이 들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씨가 박 대통령에 지시하는 내용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아시다시피 지금 수사 준비상황이다. 전체적으로 종합 검토된 상황 아니라 두 사람 통화내용 있다 정도만 확인했다”며 즉답을 피했습니다.
국무회의는 정부의 주요 정책을 심의하는 최고 정책심의의결기구입니다. 대통령의 직무 전반을 보좌하기 위한 수석비서관회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중요한 국정수행 과정에 최씨가 관여한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니 놀랍습니다. 특검팀의 향후 수사가 주목됩니다.
앞서 오전 중에 박 특검은 특검팀이 입주할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치빌딩’ 사무실의 공사현장을 방문해 준비상황을 점검했다고 합니다. 예정대로라면 사무실 입주는 13일에 이뤄집니다. 특검팀이 압수수색이나 소환조사 등 본격적인 수사에 나설 날이 머지않았군요.
박정태 선임기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