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난한 철벽방어를 뚫은 한방은 ‘최순실 국조특위’ 위원들의 날선 질문이나 위압적인 호통이 아니었다. 송곳처럼 들어온 네티즌의 결정적 제보 하나였다.
국정농단 세력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씨에 대해 12시간 동안 모르쇠로 일관했던 김 전 실장으로부터 “이제 보니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못 들었다고 할 수 없다”는 발언을 받아내 사실상 실토하도록 만든 제보. 우리나라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사이트 디시인사이드의 주식갤러리(주갤) 이용자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에게 모바일 메신저로 건넨 제보였다. 박 의원이 주갤에 직접 글을 올려 결정적 제보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박 의원은 8일 오후 2시14분 주갤 게시판에 본명을 사용한 필명으로 “디씨 명탐정 갤러리 주갤! 여러분의 용기가 세상을 바꿉니다. 이젠 주식도 대박 나세요! 감사합니다”라고 적었다. 글만으로는 부족한 듯 같은 내용을 자필로 적은 A4용지를 들고 의원실 앞에서 밝게 웃으며 촬영한 사진도 올렸다.
박 의원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조특위 2차 청문회에서 김 전 실장이 최씨를 알고 있었다는 증거로 2007년 7월 19일 영상을 제시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후보 시절 검증 청문회 영상이었다.
당시 박 대통령의 당시 대선캠프 법률자문위원장을 지낸 김 전 실장은 이 영상에서 방청석에 잡혔다. 유정복 한선교 홍사덕 의원, 강신욱 전 대법관도 동석했다. 영상에서 ‘최순실’이라는 이름은 반복적으로 나왔다. 최씨의 부친 최태민씨와 박 대통령의 약혼설을 검증하는 과정에서였다.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아닙니다” “모릅니다” “죄송합니다”를 반복했던 김 전 실장은 영상을 본 뒤 당황한 표정으로 “죄송하다. 나도 나이 들어서…”라고 말을 바꿨다. 박 의원이 “이제 와서 나이 핑계를 대지 말라”고 지적하자 김 전 실장은 “최순실이라는 이름은 이제 보니 내가 못 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순실과 접촉은 없었다”고 했다.
12시간 만에 김 전 실장의 위증을 밝힌 청문회 스타는 주갤 이용자였다. 이 제보자는 박 의원에게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제보한 과정을 주갤에 공개했고, 같은 시간 인터넷 포털사이트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순위는 ‘주식갤러리’로 요동쳤다. 김 전 실장의 실토는 광장과 거리를 밝힌 촛불이 커뮤니티사이트와 소셜미디어로 번진 결과였다.
박 의원의 인증 글 아래에는 오후 4시 현재 22만5000건 이상의 조회수와 2600건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주갤이 해냈다”는 자축과 “좋은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당부가 대부분이지만 그 사이에서 “이젠 주식도 대박 나라니… 정곡을 찌르지 말라”는 푸념의 댓글도 있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