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생각해서 넘어갔지만, 도저히 용서가 안되요. 나는 괴롭기만 한데, 남편은 나를 정신병자 취급해요.” 삶의 힘겨움이 차곡차곡 쌓여서일까. 부부상담 클리닉에 온 부인의 얼굴엔 깊은 그늘이 배어있는 듯 했다.
“남편이 7년 전에 바람을 폈어요. 당장 이혼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까 대학 갈 때까지 만이라도 참아보려고 했어요. 하지만 지난 7년간 나는 한순간도 마음 편한 적이 없는데, 저 인간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됐지 않느냐며 나더러 상담을 받으래요. 자기가 잘못해놓고 왜 내가 상담을 받아야 해요?”
부부상담을 하다보면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겪었던 상처가 잊혀지지 않는다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때린 사람은 쉽게 잊어도, 맞은 사람은 잊지 못한다’는 말처럼 마음의 큰 상처는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고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런데, 속담처럼 마음에 상처를 겪으면 평생 잊지 못하고 부부관계는 회복이 불가능할까? 몸에 난 상처는 알아서 딱지가 지기도 하건만, 마음의 상처는 왜 낫지 않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이해하려면 잠시 뇌 속으로의 여행이 필요하다. 뇌는 복잡하지만 부부관계의 회복을 위해선 ‘생각 뇌’와 ‘감정 뇌’이렇게 두 코스만 들려보면 된다. 배우자의 외도를 알게 됐다. 참을 수 없는 배신감과 화가 치밀어 오른다. 당장이라도 사단을 낼 태세가 된다. 감정 뇌의 즉각적인 반응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몇 번 난리치다가 아이들 생각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꾹 참고 누른다. 이는 현실을 따지는 이성적인 생각 뇌의 애씀이다.
그런데, 참고 넘기기로 결정했건만 불쑥 불쑥 생각이 나고 배신감과 화가 치밀어 오른다. 화병이 될 지경이다. 이성적인 뇌의 애씀과 달리 상처받은 감정 뇌는 넘어가지 못하겠다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문제는 남편의 외도에서 시작됐건만, 뇌 속의 ‘생각 뇌’와 ‘감정 뇌’의 싸움이 지속되면서 갈수록 머릿속은 시끄러워진다. 두 개의 뇌가 싸움이 붙게 되면 승패는 불 보듯 뻔해진다. 언제나 승승장구하는 건 ‘감정 뇌’이기 때문이다.
감정 뇌 중심에는 ‘편도체’라 부르는 아몬드처럼 생긴 부위가 있는데 이 부위가 감정 뇌에서도 제일 중요하다. 편도체는 위험을 감지하면 불이 들어오듯 작동하면서 불안과 분노를 일으키는데, 감정 뇌인 편도체가 난리가 나는 상황을 ‘편도체 납치’라고 부른다. 비행기가 테러범에게 납치되어 조종석을 뺏기듯 감정 뇌에게 이성적 제어력을 뺏기게 된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부부싸움의 폭풍우를 통과할 때는 상처받은 편도체가 분노의 파도를 일으키며 생각 뇌를 흔들어 댄다. 생각 뇌가 배의 조타기를 놓치고 배가 뒤집혀 버리는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분노는 폭발한다. ‘편도체 납치’가 일어나는 순간이다. 그럼 부부싸움은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닫게 되고, 심하면 욕설과 폭력까지 등장한다.
‘편도체 납치’관점에서 바라보면 부부싸움의 원인과 해법이 의외의 방식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7년 전의 남편의 외도 문제로 최면 부부상담 클리닉에 왔던 A씨. 최면 중에 원인을 탐색해 보니 A씨의 감정 뇌는 마음이 닫히고 편도체 납치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원인으로 남편이 아닌 친정아빠를 지목했다. 바람을 피고도 반성하기는커녕 자신과 엄마를 버리고 떠났던 친정아빠. 그 아빠에게 받은 상처와 분노가 편도체 깊숙이 새겨져 남편에게로 향했던 것이다. A씨는 최면 중에 친정아빠와의 관계에서 겪었던 상처와 분노를 오열을 토하듯 뱉어낸 후에야 용서에 이를 수 있었다.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다음 부부상담 클리닉 시간에 온 A씨. 친정아빠를 용서하고 나니 비로소 마음이 안정되고 풀리는 것 같다고 한다. “이 모든 고통이 남편의 외도 때문이라고만 원망해 왔는데, 최면 중에 친정아빠가 떠오를 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용서하고 나니 이제 남편이 다가와도 몸이 굳지 않고 한결 편해요. 지난주에 남편과 공원을 산책하는데, 남편이 내 손을 잡으려 하는데도 뿌리치지 않고 잡아줬어요. 남편이 놀라더라고요. 그간에 남편이 반성하고 가정으로 돌아오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기는 했어요. 하지만 남편이 뭘 하더라도 밉게만 보이고 화가 났었는데, 마음이 풀리고 나니 남편이 애쓰는 것이 이제 안쓰럽게 느껴져요.”
피아노와 기타줄을 잘 조율해 놓고 피아노 건반 하나를 치면, 멀리 떨어져 있는 기타에서도피아노 건반과 같은 음의 기타줄이 저절로 울린다고 한다. 공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 뇌 속의 편도체도 이렇게 작동한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어떤 자극이나 스트레스라도 편도체 입장에서 볼 때 과거에 겪었던 상처와 뭔가 비슷한 꺼리라도 있다면, 편도체는 이를 위협으로 간주하고 공명하면서 편도체 납치가 일어나곤 한다.
같은 패턴의 부부싸움이 지치도록 반복되고 있다면. 배우자를 바꾸어 보려고 잔소리도 해보고, 원망도 비난도 해 보았지만 효과가 없다면. 그렇다면 내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민감하게 불이 켜지고 있을지도 모를 편도체의 상처를 먼저 달래주고 치유해 주는 것이, 부부간의 관계회복을 위한 더 빠른 지름길이 될지도 모른다.
최면심리상담가·인천 구월동 체인지 심리 최면 상담센터 소장
[박준화의 멘탈디톡] 감정 뇌의 상처를 치유하는 최면 부부상담 클리닉
입력 2016-12-07 1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