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은 극의 전개에서 선악의 구색을 맞추려는 사람들에게 냉소를 짓는다. 그의 영화에서 선과 악의 경계는 모호하다. 다크나이트 시리즈가 그렇다. 정의감에 불탔던 고담시 지방검사 하비 덴트는 약혼자의 죽음을 계기로 악의 길에 들어선다. 목숨을 걸고 마피아와 싸웠던 의인 ‘화이트나이트(백기사)’는 그렇게 악당 ‘투 페이스 하비(두 얼굴의 하비)’로 전락한다.
덴트는 약혼자의 죽음을 배트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배트맨을 불러 싸웠고, 그 과정에서 죽었다. 하지만 배트맨은 고담시민들이 마지막 양심으로 여겼던 덴트마저 악당으로 바꾼 처참한 현실에 실망해 악과 맞서 싸우길 주저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그래서 덴트의 모든 죄를 뒤집어쓴다. 이 사실을 유일하게 아는 고담시 경찰국장 제임스 고든은 배트맨을 ‘다크나이트(흑기사)’라고 부른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악당으로 지목돼 손가락질을 받지만, 사실은 선을 수호하기 위해 이 모든 억울한 비난을 감수할 수 있는 진짜 의인. 놀런 감독이 다크나이트 시리즈에서 재창조한 배트맨은 그런 인물이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다크나이트설’이 불거졌다.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건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수호하는 ‘호위무사’를 자처했지만, 사실은 국정농단 세력을 법적으로 처벌할 토대를 마련하고 촛불민심을 부채질한 주인공은 김 의원이라는 해석이 7일 인터넷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김 의원의 다크나이트설을 뒷받침하는 첫 번째 근거는 형사소송법 개정이다. 김 의원은 지난 5월 19일 페이스북에 “그동안 컴퓨터 문서를 부인하면 증거로 채택할 수 없었다. 내가 대표 발의해 오늘 형사소송법을 개정했다. 이제는 과학적 감정이 있으면 (컴퓨터 내 문서를)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디지털이 증거의 세계로 들어오는데 수십년을 소요했다. 특히 간첩사건에서 아주 유용할 것”이라고 적었다.
김 의원이 발의해 개정한 형사소송법은 결과적으로 최씨의 것으로 알려진 태블릿PC를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증거물로 채택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검찰은 최씨가 박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할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태블릿PC를 지난 10월 입수해 분석하고 있다. 최씨는 “내 것이 아니다”라고 부인했지만, 문제의 태블릿PC 안에서 최씨의 셀카 사진이 나왔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