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성덕의 사방팔방] 3. 朴 특검의 창, 재벌 방패 뚫을 수 있을까

입력 2016-12-06 17:32 수정 2016-12-08 10:4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박영수 특별검사의 창이 재벌의 방패를 뚫을 수 있을까.

박 특검은 사상 최대 규모의 수사팀을 구성하고 있고, 재벌은 로펌의 도움을 받아 한 판 승부를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 박 특검의 창과 재벌의 방패가 동시에 부딪친 적은 없다.

 수사진용을 꾸리고 있는 박 특검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4일간의 시차를 두고 박 특검과 재계 총수들이 탐색전을 벌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박 특검이 먼저 창을 손에 잡았다. 재벌을 향해 창을 휘두른 것은 아니지만 창끝을 예리하게 벼리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 것이다. 

박 특검은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 혐의 입증에 최선을 다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박 특검은 “검찰 수사결과에 구애받지 않고 원점부터 다시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재단 기금의 본질을 직권남용 등으로 보는 것은 구멍이 많은 것 같다”며 “박 대통령이 문화융성이란 명분으로 통치행위를 내세울 텐데 그걸 어떻게 깰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1차 청문회에 출석한 허창수 전경련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뉴시스

 박 특검이 친정인 검찰을 향해 ‘검찰 수사결과에 구멍이 많은 것 같다’고 표현한 것은 뇌물 혐의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입증에도 자신이 있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박 특검은 윤석열 대전고검 부장검사를 수사팀장으로 선발하고 4명의 특검보를 임명하는 등 수사진용 구성에 적극 나서면서 검찰로부터 수사기록을 넘겨받아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박 특검은 6일 열린 ‘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출석한 재계 총수들의 발언도 예의주시했다. 박 특검은 기자들과 만나 “수사 실체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이 마땅치 않다”면서도 “(청문회를) 지켜보고 있다. (수사에) 물론 (참고한다)”고 말했다.

 재계 총수들을 소환할 때까지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음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이런 행보를 보이고 있는 박 특검에 대해 국민은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재계 총수들은 이날 청문회에서 예상한대로 대가성을 부인했다. 여야 의원들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의 대가성 등을 강도 높게 추궁했지만 단 한 명도 인정하지 않았다. 총수별로 뉘앙스는 조금씩 달랐지만 한결같이 대가성을 부인하고 나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여야 의원들의 집중 질문 공세를 받았다. 일부에서는 ‘이재용 청문회’라는 말까지 나왔다. 새누리당 이만희 의원이 “재단 출연은 삼성그룹의 안정적인 승계와 이 부회장의 경영권 확보를 위한 대가성이 있다”고 지적하자 이 부회장은 “(삼성은) 단 한 번도 뭘 바란다든지, 반대급부를 바라면서 출연하거나 지원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들이 잇따라 의혹을 제기하자 이 부회장은 “모든 사회공헌이든 출연이든 어떤 부분도 대가를 바라고 하는 지원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박 대통령과 두 차례 독대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대가성 의혹은 부인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이날 청문회에 출석한 재계 총수들은 대체로 “당시 청와대의 지시와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출연의 강제성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사업 특혜나 총수 사면 등의 대가를 바란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주요 그룹들은 미리 제출한 자료를 통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출연한 것은 공익적 성격이 있고 적법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뇌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계 총수들의 발언이 사실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박 특검이 강도 높은 수사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진실을 예단할 수 없다. 그러나 국민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정경유착의 부작용으로 보고 있다. 촛불 집회에서도 불의한 정권과 부도덕한 재벌이 합작한 것이라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재계 총수들의 ‘대가성 부인 발언’은 박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박 특검이 대가성을 입증할 증거를 들이댈 때를 대비한 발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재계 총수들은 국정조사특위에 증인으로 나오기 전에 내로라하는 로펌들과 입을 맞추고 다양한 시나리오로 예행연습을 했을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할 박영수 특별검사가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 법무법인 강남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하면 기업은 피해자로 간주된다. 하지만 뇌물 혐의를 적용하면 뇌물 공여자로 처벌을 받게 된다. 뇌물죄를 적용하면 처벌 수위가 높아진다. 이제 박 특검과 재벌의 ‘뇌물 공방’이 막을 올릴 것이다.

 박 특검은 만에 하나라도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엄정한 수사를 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뇌물을 주고 대가를 받은 기업이 있다면 엄벌한다는 각오로 수사에 임해야 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