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표 민간 발레단인 서울발레시어터(SBT)가 내년부터 수장을 교체한다. 1995년 창단 이래 22년 만이다.
한국 창작발레의 대중화를 목표로 창단부터 이끌어온 김인희 단장-제임스 전 상임안무가 겸 예술감독 부부에 이어 나인호(45) 단장-조현경(44) 예술감독 부부가 방향타를 잡게 됐다. 한 예술단체의 운영을 부부 예술가가 잇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5일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 단장은 “20주년이던 지난해부터 새로운 리더십으로 SBT가 제2의 도약을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나 신임 단장과 조 신임 감독은 창단 멤버로 오랫동안 함께해온 만큼 SBT의 이념과 가치를 이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 발레단 운영이라는 무거운 짐을 넘겨 미안하게 생각한다”면서 “나와 제임스는 앞으로도 SBT의 예술교육과 안무 등 여러 부문에서 함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나 신임 단장은 SBT 주역무용수 겸 대외협력팀장으로 활동했다. 무릎부상로 은퇴한 후에는 SBT가 상주단체로 있는 경기도 과천시민회관에서 공연장 운영과 행정실무능력을 키워왔다. 조 신임 감독은 주역무용수를 거쳐 2009년부터는 지도위원으로 단원 교육을 맡아 왔다.
나 신임 단장은 “SBT를 한국 발레계의 허브 같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 국내 좋은 안무가와 무용수들은 물론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들과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거점으로 만들고 싶다”면서 “다양한 마케팅 등을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특히 100여개나 되는 레퍼토리는 SBT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SBT가 국내 3대 발레단이라고는 하지만 각각 국고와 종교재단의 지원을 받는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과 달리 독자적으로 생존해야 하는 만큼 늘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 왔다. 특히 지난 3~4년간 세월호․메르스 등 공연계 악재로 적자가 누적되면서 재정상황이 크게 악화됐다. 창단 이후 어떻게든 유지했던 월급제를 중단하고 공연에 따른 수당제 방식으로 바꾸면서 단원 30명, 직원 10명이던 발레단은 단원 22명, 직원 6명으로 줄었다.
김 단장은 “21년 중 3~4년만 흑자였고 나머지는 적자였다. 누적적자 5억원은 신임 단장에게 부담이 가지 않도록 나와 제임스가 떠맡았다”면서 “5억원의 빚이 남았지만 이 정도면 기적이다. SBT를 키운 세월은 힘들었을지언정 후회스럽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어 “나와 제임스에게 자식 같은 SBT가 신임 감독 부부에게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 신임 감독은 “처음엔 발레단 운영이 엄두가 나지 않아 거절했었다. 하지만 올해 남편)이 다시 얘기를 꺼냈을 때 마음을 바꿨다”면서 “아내의 입장에서만 보면 남편을 말려야 했지만 SBT 단원의 입장에서 남편만큼 발레단을 잘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봤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김 단장은 퇴임 후에도 민간발레단 모임인 ‘발레STP협동조합’의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발레의 대중화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 전 감독은 교편을 잡고 있는 한국체육대학에서 후학 양성을 하는 한편 좀더 안무 작업에 주력할 예정이다.
전 감독은 “한국발레 팬이 예전에 비해 늘었지만 여전히 많은 것은 아니다. ‘백조의 호수’ 같은 클래식 발레는 그나마 관객이 들지만 모던 및 컨템포러리 발레는 여전히 힘든 상황이다”면서 “티켓이 잘 팔릴 작품만 무대에 올린다면 예술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창작발레를 바라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