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마비' 북한에 빌미 줄까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박 대통령이 3차 대국민 담화를 가진 이튿날인 30일(현지시간) ‘한국 대통령의 반가운 하야 제안’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내놨다. 한반도를 비롯한 세계 질서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박 대통령이 빨리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이 담긴 글이다.
블룸버그는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안정”이라며 “지금 세계는 서울의 권력이 진공 상태인 것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했다. 미국은 대통령직 인수인계로 불안정한 상황인데다 차기 행정부의 대(對)아시아 정책 역시 혼선을 더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하면 북한 입장에서는 그를 시험하고 싶어질 것”이라며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또 청년 실업, 막대한 가계 부채 등 산적한 국내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한국 정부도 국정 마비 상태가 버거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지나치게 시간을 끌지 않고 차분하게 차기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것이 한국과 세계 모두를 위해 더 좋다”고 강조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북한이 노릴 반사 이익을 경계했다. WSJ는 28일(현지시간) 사설을 통해 “한반도는 언제나 위험했지만 앞으로 몇 달간 특히 그럴 것”이라며 “북한이 이(박 대통령 탄핵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려 들 수 있다는 위험”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남한이 민주적인 논쟁에 따른 진통을 겪고 있는 이 상황을 약점으로 잘못 인식할 수 있다”면서 “내년 2월로 예정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공격의 빌미로 삼을 수 있다”고 봤다. WSJ는 “세계의 독재자들은 언제나 새 미국 대통령을 시험하려 했고 (한반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등의) 트럼프 공약이 오해의 소지를 더했다”고도 지적했다.
‘꽃길’ 걷던 한일관계 격랑 속으로?
아사히, 요미우리, 마이니치, 도쿄, 산케이, 니혼게이자이 등 일본 주요 일간지 6개는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를 1면에 소화하며 비중 있게 다뤘다. 한일관계를 다지는 데 힘써온 박 대통령이 물러난다면 양국의 관계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아사히는 사임 시기를 국회의 결정에 맡긴다는 박 대통령의 담화를 ‘박 쇼크(朴 shock)’라고 칭했다. 특히 다음 달 19~20일로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담의 개최 여부에 의문을 던지면서 “‘(위안부)소녀상’ 이전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썼다. ‘북한 변수’도 언급했다. 아사히는 외무성 간부를 인용해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 지에 따라 지금의 한미일 동맹이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는 “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한일합의로 양국 관계를 개선했고 지난 23일에는 양국의 국방 기밀을 공유하는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체결했다”며 “합력과 합의의 이행 여부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야당과 시민단체가 한일합의 백지화를 원하고 있는 상황을 언급하면서 합의 자체가 철회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언론의 이런 지적에 대해 선을 그었다. 그는 이날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박 대통령의 사의 표명으로 소녀상 이전이 힘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위안부 합의나 GSOMIA는 국가간 합의사항이므로 성실하게 합의를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중일 정상회의에 대해서도 “연내 개최 방침에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북핵 위협에는 “한국과 긴밀히 협조한다는 점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