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영이 남자야 여자야?”
“음... 남자~”
인영이를 남자로 만든 주범은 민준이다. 민준이는 EBS 프로그램 ‘봉구야 말해줘 시즌2’에 나오는 5살짜리 남자 아이다. 엄마가 러시아사람인 다문화가족 민준이네와 민준이와 함께 사는 말하는 인형 봉구가 주인공이다.
인영이는 이 프로그램의 마니아다. 매일 하루에 5~6편은 기본으로 본다. 수십편의 에피소드 제목을 다 외울 정도다. 아직 면역력이 약해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기가 어려운 인영이에게 봉구와 민준이는 가장 친한 친구인 셈이다.
인영이는 가끔 민준이로 환생(?)한다. 자기를 민준이라고 부르라고 하고, 엄마를 “민준이 엄마”라고 부르고, 윤영이를 민준이의 언니인 “하영이 언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도 민준이처럼 태권도를 하겠다며 발차기 연습을 한다. ‘봉구야 말해줘 시즌 1’의 주인공은 여자아이였는데, 왜 시즌2에는 남자아이로 바뀌어서 우리 인영이의 성 정체성을 흔들리게 하는지 모를 일이다.
인영이는 이 프로그램을 알고부터 병원갈 때 민준이처럼 가방(얘도 말하는 코끼리 인형으로 나옴)을 앞으로 매고 간다. 그 가방에 봉구를 넣고 싶지만 봉구인형은 시중에서 판매하지 않는다. 봉구인형을 받는 유일한 방법은 프로그램 이벤트에 당첨되는 일이다. 때마침 이번달 초 ‘어린이 자동차 안전이벤트’가 있었다. 안전벨트 맨 사진과 사연을 보내면 이중 10명을 뽑아서 봉구 인형을 준다고 했다. 그리고 아빠의 글발이 먹혔는지 아빠는 뽑혔다. 매번 떨어지는 세종시 아파트 분양에 당첨됐다고 해도 이보다 기쁠 수 없을 것 같다.
집에서 엄마가 둘만 있어 답답하는 인영이를 위해 엄마는 요즘 대형마트 문화센터에서 하는 놀이교실을 종종 데려간다. 48개월 미만 수업을 듣는데 인영이가 덩치는 가장 큰 데 엄마 옆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쑥스러워한다고 한다. 내년에도 당장 어린이집에는 보내질 못할 것 같은데 사회성을 어떻게 쌓게 해 줄지 걱정도 된다.
인영이는 아직 미취학아동이니 그렇지만 소아백혈병을 앓는 초·중·고 학생들은 학업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이들은 치료기간 중 원격수업을 받을 수 있는데, 인영이처럼 집중 항암치료가 끝나고 2년여간의 긴 유지 치료 때에는 원래 학교에 복귀를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학교 복학을 고려할 때 1~6개월 내에 건강장애학생(원격수업 가능) 등록 포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은 매일 혈액수치가 다르고 내일 혹은 다음주의 컨디션을 장담할 수 없다. 수시로 외래 또는 입원 진료가 필요한데 6개월 이내에서 원적학교에 복구하던지 건강장애학생 등록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픈 아이들의 특성을 도외시하는 지나친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다. 기간 제한없이 원적학교 수업과 원격 수업을 병행하도록 하는 게 정부 입장에서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인지 이해할 수 없다. 봉구가 집에오면 인영이에게 봉구한테 물어보라고 시켜야겠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