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재난을 소재로 한 영화 ‘판도라’에 등장하는 대통령은 현실과 꽤나 겹쳐 보인다. 이 배역을 연기한 배우 김명민(44)이 밝힌 연기 소감마저 왠지 뼈 있게 들린다.
‘판도라’는 우리나라에서 역대 최대 규모이 강진이 발생해 최악의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재난 상황 속에서 대통령은 어찌해야 할지 갈피조차 못 잡고 참모진은 진실을 감추기에 급급하다. 그 과정 속에서 상황은 악화되고, 피해는 온전히 평범한 사람들이 떠안게 된다.
특히나 극 중 대통령(김명민)은 고민만 많고 해결책은 없는 무능한 권력자로 그려진다. ‘실세’인 총리(이경영)와 사사건건 대립하는데 힘이 없다. 총리가 지휘권을 잡고 이런저런 지시사항을 내릴 때 대통령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낙담만 하고 있다.
29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CGV에서 열린 ‘판도라’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김명민이 “대통령 역을 맡은 김명민”이라고 인사하자 현장에선 웃음이 터졌다.
그는 “대통령 역을 맡았다고 할 때마다 (사람들이) 웃으신다”면서 “최선을 다해 (캐릭터를) 소화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보셨는지 모르겠다”고 입을 열었다.
“무능한 대통령을 어떻게 하면 무능해보이지 않게 할까 노력했는데 역시 무능해보이네요. 제가 극 중에서 제일 많이 했던 대사가 ‘죄송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지금 이 자리도 굉장히 송구스럽네요. 촬영 당시 저는 청와대에서 럭셔리하게 있었는데 다른 배우들은 재난 현장에서 고생을 하셨더군요.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현 시국과 맞물려 대통령 역을 맡은 소감을 들려달라는 질문에는 “그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 그 대답 대신 대통령 역을 연기하면서 아쉬웠던 점에 대해 얘기하겠다”고 대처했다.
김명민은 “총리를 잘못 만난 게 제일 아쉬웠다”며 “총리만 잘 만났어도 그렇게 무능한 대통령으로 낙인찍히지 않았을 텐데 싶다”고 했다. 이때 객석 여기저기선 또 폭소가 터졌다.
“감독님께서 제게 맡기신 역할이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초반에는) 무능하지만 각성을 하고 난 뒤 컨트롤타워를 재정립하는 힘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죠. 수장이 책임을 지고 이끌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현장에 가지 못하고 상황통제실 안에서만 지시해야 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제가 대통령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다음에는 유능한 대통령 역을 맡아보고 싶습니다.”
끝으로 김명민은 “우리 영화가 나라와 국민에게 희망과 경각심을 일깨워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면서 “(극 중)무능한 대통령으로 인해 가슴이 답답하고 울화가 치미시겠지만 참고 봐주시라.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다”라고 재치 있게 말했다.
박정우 감독은 “제가 생각하는 훌륭한 대통령은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캐릭터 설정을 한 것”이라며 “초반에는 현실적으로 봤음직한 대통령이지만 후반에는 제 바람을 담았다. 능력이 특출하지 않더라도 국민의 생명을 소중히 하는 대통령이 우리가 바라는 대통령이 아니겠나 생각했다”고 전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