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원로목사들 선언문 "굵은 베옷입고 통회자복하는 기도를"

입력 2016-11-29 12:50 수정 2016-11-29 17:10
원로목사들이 29일 강원도 영월 한반도지형 전망대 앞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뜨겁게 기도하고 있다. 영월=강민석 선임기자

한국교회 원로목사 40여명이 29일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한반도지형 전망대 앞에 모였다.

‘한국교회 원로목회자 구국기도회’(준비위원장 김진옥 목사)를 갖기 위함이다. 

한국기독교원로목회자재단(이사장 임원순 목사) 주최로 열린 이날 기도회는 시종 나라의 안녕과 평화를 염원하는 기도와 찬양으로 진행됐다.

70∼80대 노(老) 목회자들은 먼저 한국교회가 하나 되지 못한 죄부터 회개했다. 기독교 단체의 분열과 교회 내 다툼에 대한 자성(自省)이었다. 

일부 목회자들은 “주여, 이 나라와 백성을 긍휼히 여겨 주소서”라며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원로목사들은 이날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한 선언문을 낭독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이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직면했다. 국정이 흔들리고 위정자들의 부끄러운 작태가,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굵은 베옷을 입고 통회자복하는 기도를 드림으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구해야한다”며 “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 우리 원로 목회자들은 마음을 찢으며 회개한다”고 말했다.

이어 “헛된 습관과 세상적인 것에 집착한 무지가 오늘의 이 무서운 결과를 낳았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가 너무 부족했음을 고백 한다”고 했다.

특히 “정직한 사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겠다”면서 “한국교회의 원로목회자들은 하나님 앞에,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 앞에, 힘들고 어려운 지금 이 시간을, 회개와 기도로 빛을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갈 것을 엄숙하고 강력하게 선언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선언문을 낭독한 한국기독교원로목사회 명예회장 이상모(84) 목사는 “이 나라가 ‘최순실 게이트’로 주저 앉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며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기도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대한민국은 그동안 크게 발전했지만 아직 정신적으로는 후진국인 것 같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다. 대한민국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경유착이 사라지는 등 다시한번 크게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전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장 김용도(82)목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를 한 뒤, “나이 먹은 사람, 그리고 목회자부터 기도해야한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길 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바로 서기 위해 간절히 기도드렸다”고 말했다.

기도회가 열린 한반도지형은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국토를 쏙 빼닮았다.  

우리나라의 동고서저(東高西低) 지형처럼 강을 낀 동쪽은 높은 절벽에 나무가 울창한 반면, 서쪽은 경사가 완만한 평지에 가깝다. 

문화재청은 한반도지형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75호로 지정했다.

재단은 홀로된 노 목사들에게 김장김치를 전달했다. 

한국기독교평신도총연합회 대표회장 이주태 장로는 “우리나라가 위기를 벗어나려면 이렇게 기도하고 행동하는 목회자들이 필요하다”며 “원로목사들의 기도가 한국사회를 다시 바로 세워 놓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다음은 선언문 전문이다.

한국교회 원로목회자 구국기도회 선언문(宣言文)

반만년 역사를 지켜 주시고 한국기독교 130년 동안에 선교 대국을 이루었던 이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국정이 흔들리고 위정자들의 부끄러운 작태가,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36년간 일제의 억압과 수탈을 당하고, 전쟁의 폐허에서 무너진 성벽을 일으켜 주신 은혜를 다시 기억합니다.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하나님의 은총을 다시 입는 백성이 될 수 있도록 전심을 다해 기도해야합니다. 

굵은 베옷을 입고 통회자복하는 기도를 드림으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구해야 합니다.

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 우리 원로 목회자들은 마음을 찢으며 회개합니다.

헛된 습관과 세상적인 것에 집착한 무지가, 오늘의 이 무서운 결과를 낳았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가 너무 부족했음을 고백합니다.

연약한 우리 믿음 앞에 다시 무릎을 꿇습니다. 정직한 사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죽음의 긴 터널은, 이제 부활의 빛으로 다시 소생할 것입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흔들리는 나라를 기도의 두 손으로 받들어 희망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믿습니다.

고난(苦難)은 저주가 아닙니다. 고난은 우리가 치욕의 채찍을 맞으며 부르짖을 때, 우리를 지켜 주신 변장된 축복입니다. 고난은 절망의 모습을 희망의 노래로 바꿔주었던 사랑입니다. 

이제 에스겔의 마른 뼈 같은 이 나라는, 피눈물의 기도가 다시 복음이 되어 깨어 날 것입니다.

찬송은 현실이 되고, 제사장 나라의 깃발은 천국의 바람을 몰아 올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원로목회자들은 하나님 앞에,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 앞에, 힘들고 어려운 지금 이 시간을, 회개와 기도로 빛을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갈 것을 엄숙하고 강력하게 선언합니다.

한국교회 원로목회자 구국기도회 참석자 일동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