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1월 8일 카스트로는 아바나에서 승리의 연설을 합니다. 1953년 풀헨시오 바티스타 독재정권에 저항해 산티아고 정부군 기지를 습격한지 6년만입니다. 그동안 카스트로와 동생 라울은 감옥에 갔다가 풀려나 멕시코에서 군사훈련을 했죠. 1956년 11월 카스트로는 동료 82명과 멕시코에서 레저 요트 ‘그란마’를 타고 쿠바로 갑니다.
하지만 카스트로가 총을 들고 귀국한다는 정보는 샜습니다. 그란마가 도착한 쿠바 해안에는 정부군이 진을 치고 있었죠. 총격전이 벌어지고 82명 중 12명만 살았습니다. 살아남은 12명은 산으로 도망쳐 게릴라전을 시작합니다. 위 사진은 카스트로가 1957년 산 속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카스트로와 동료들은 숨어 활동하던 반정부 인사들과 속속 합류했습니다. 세력은 점점 커졌죠. 1958년 쿠바에서 두번째 큰 도시 산타클라라를 시민의 도움을 받아 점령합니다. 독재자 바티스타는 결국 도미니카로 도망갑니다. 위 사진은 1959년 1월 7일에 찍었습니다. 다음날 아바나 입성을 앞두고 시내를 바라보는 모습이죠.
혁명에 성공하기 전에 찍은 엄청난 사진이 있습니다. 오른쪽 두번째가 카스트로입니다. 그의 앞에는 동생 라울 카스트로 현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앉아있습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카스트로보다 더 이름을 날린 사람이 보입니다. 체 게바라입니다. 왼쪽 두번째, 소총에 왼손을 걸치고 있습니다.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부잣집 도련님이었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의대를 졸업한 의사입니다(카스트로가 쿠바에 상륙했을 때도 공식 직책은 군의관이었습니다). 체 게바라는 베네수엘라, 페루, 과테말라, 멕시코를 전전하며 사회주의 혁명가로 변신합니다.
카스트로는 멕시코에서 만났죠. 하지만 체 게바라는 쿠바혁명이 성공한 뒤 볼리비아에서 게릴라전을 벌이다 사살됩니다. 카스트로 다음가는 2인자였지만 “할일을 모두 마쳤다”는 편지를 남기고 쿠바를 떠났습니다. 붉은 깃발에 그려진 얼굴이 체 게바라입니다. 티셔츠 디자인에 많이 사용된 익숙한 얼굴입니다.
1959년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부통령이 카스트로를 찾아갑니다. 플로리다 끝 마이애미와 쿠바 아바나의 거리는 약 370㎞입니다. 미국 입장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카스트로가 부담스러울 수밖에요.
카스트로는 거침없이 쿠바를 사회주의 국가로 바꿉니다. 교회재산을 모두 국유화하고 성직자를 추방합니다. 미국인이 소유한 대농장을 모두 몰수합니다. 반체제 인사를 추방하고 신문사를 폐쇄합니다. 미국 대신 구소련과 급속히 가까워집니다. 미국이 설탕을 수입하지 않자 남는 설탕을 모두 소련에 팝니다.
카스트로는 1963년 모스코바를 방문합니다. 스탈린이 죽은 뒤 권력을 장악한 니키타 후르시초프와 손을 잡고 찍은 사진은 당시 쿠바와 소련의 밀월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중국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2003년 베이징을 방문해 동갑내기 장쩌민 주석과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소련 붕괴 이후 중국은 매년 수억 달러를 쿠바에 원조하는 가장 큰 후원국이었습니다. 경제가 파탄 난 쿠바에게는 생명줄과 같았죠.
최근 쿠바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2015년 프란시스 교황이 카스트로를 만났습니다. 가톨릭 교회가 소유한 재산을 몰수하고 성직자를 모두 추방한지 54년만입니다.
쿠바는 지난 3월 아바나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국교정상화에 합의했습니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과정에서 미·쿠바 국교정상화 추진을 강력히 반대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고승욱 기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