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야구팬, 소까지 나왔다…시민들은 3주째 광장출근 “이게 나라냐”

입력 2016-11-27 16:13 수정 2016-11-27 16:21
프로야구 팬들이 26일 각자 응원하는 팀 깃발을 흔들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제5차 촛불집회에 참여했다(위). 이날 서울대 교수들도 단체로 모여 집회에 힘을 보탰다(가운데).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에 모여 밤늦게까지 촛불을 들었다(아래).

26일 150만명(주최측 추산)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여 다섯번째 촛불을 밝혔다. 장기화된 주말시위에도 불구하고 몇 주째 출석도장을 찍은 이들이 대다수였다. 역대 최다 인원이 모인만큼 참가자 구성도 다양했다.

3주째 광장 찾는 사람들
‘출석률 100%’를 자랑하는 시민들은 궂은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3주째 집회에 참석한 김영애(72·여)씨는 이날도 흩날리는 눈발을 뚫고 오후 1시쯤 광장을 찾았다. 김씨는 “일찍부터 집안일 다해놓고 남편과 매주말 나오고 있다. 학생들을 보면 미안해 죽겠다”며 “한참 공부해야할 나이에 주말마다 밖에 나와서 이게 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충남 홍성에서 3주째 서울로 올라오고 있다는 정미선(53·여)씨는 3주간 거리로 나올 수 있었던 동력을 ‘민주주의’에서 찾았다. 정씨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가만있을 수 없었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서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채운(18)군도 수능 5일 전인 지난 12일부터 매주 토요일을 광화문에서 보냈다. 박군은 “좋은 나라에 살아야 공부할 환경도 조성될 수 있다”며 “이 시위가 끝날 때까지 나오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공사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을 운전한다는 위진섭(53)씨는 토요일 오후마다 광화문으로 나왔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시위에 참여한 위씨는 “기성세대가 되서 학생들 보기 민망해서 못살겠다. 외신을 봐도 나라망신”이라며 목소리 높였다. 위씨는 “주말에 집에서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다. 일해도 일하는 것 같지 않아서 매주 거리로 나오고 있다”고 집회에 나오는 이유를 설명했다.

경찰도 몇 주째 주말을 반납하고 있다. 서울의 한 경찰서 소속 김모(40)경위는 “3주째 주말을 반납하고 새벽 2~3시쯤 퇴근하고 있다”면서도 “시민들이 경찰 버스에 붙은 스티커를 떼 주고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보면서 공무원으로서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광화문 광장 근처 세종로 파출소 경찰들도 3주째 주말 없이 야근 중이다. 세종로 파출소가 미아보호소와 유실물센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몰리는 인파 때문에 부모의 손을 놓치는 아이가 많아 매 집회마다 1~2건의 실종아동신고 들어오는 상황이다. 세종로 파출소 소속 이효연(35·여)경사는 “3주 동안 주말 반납하고 나와서 힘들긴 하지만 평화 집회가 이뤄져서 시민들께 고맙다”고 말했다.

“진리는 거리에”&“야구로 치면 5회말”
대학교수들도 진리를 찾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전국교수연구자 비상시국회의는 이날 거리시국강연을 열고 “200만 주권자들이 사실상 ‘국민 탄핵’을 결행했음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철면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일갈했다. 첫 강연을 맡은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갓 교수가 됐던 1987년 여름 ‘아, 이 땅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서려고 하는구나’하는 마음에 감격했다”며 “그런데 지난 30년 동안 사회 기득권층은 더욱 견고해지고 학생과 교수의 의식 또한 죽어갔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날 참여한 또 다른 서울대 교수는 6월 항쟁당시와 최근 집회문화를 비교하기도 했다. 당시 갓 스물로 광장에 나왔던 이 교수는 “당시에는 주위상인들이 데모하지 말라고 데모를 했다. 그런데 최근 집회는 오히려 주위 상인들이 대목을 맞이한 느낌”이라며 웃었다. 그는 “그때는 화염병이나 돌을 던지는 등 시위가 과격했지만 지금은 가족들도 같이 나올 정도로 평화롭다”며 “당시엔 그런 식으로밖에 표출이 안됐기 때문인데 지금은 이렇게 평화로운 기조로 가는 게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작가 황석영(63)씨도 이날 광화문에 모습을 드러냈다. 황 작가는  “집회가 축제 같아서 재밌는데다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나왔다”며 참가 이유를 밝혔다. 그는 “100만명이 모여도 박근혜는 꿈쩍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지금 보면 박근혜 주위의 시스템이 차츰 떨어져나가고 있지 않나. 단계적으로 이제는 정치권이 움직이고 있다”며 집회의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황석영 작가는 “이런 시위라면 축제처럼 연말까지 즐겨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프로야구 팬들도 ‘대통령 퇴진’이라는 목표아래 하나로 뭉쳤다. 이들은 각자 응원하는 팀 유니폼을 입고 야구선수 응원가 가사를 ‘박근혜 하야’로 바꿔 불렀다. SNS를 통해 이들을 한데 모은 임용수 캐스터는 “야구에서 투수와 타자, 포수가 서로 도움을 받는 것처럼 사회도 혼자 살수 없는 곳”이라며 “야구를 즐기는 것도 나라가 건강해야 할 수 있지 않냐”고 말했다.

그는 현 상황을 야구경기로 비유해 ‘5회 말’로 표현했다. 이제 경기의 반환점을 돌았다는 뜻인 동시에 장기전을 대비하고 있다는 의미기도 했다. 임용수 캐스터는 “청와대쪽에선 아직 3회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아직 경기가 끝나려면 한참 남았다고 생각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야구팬들은 각자 응원하는 팀의 깃발을 흔들며 힘차게 광화문으로 합류했다.

소 몰고, 가방 메고, 유모차 끌고
이날 집회에는 소를 끌고 온 농민도 있었다. 광주에서 왔다는 이 농민은 ‘근혜씨 집에가소’라는 현수막을 두른 소를 타고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경찰 수십명이 소와 농민을 둘러싸고 광화문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대치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민 수십명은 경찰에 맞서 “소는 위험하지 않다. 소를 보내달라”고 외쳤다.

가죽백팩을 메고 온 직장인부대도 많았다. 대기업 직장인 허모(24·여)씨는 오후 7시30분쯤 직장동기 2명과 프레스센터 건물 옆에서 본 집회에 참여했다. 회사가 직원들에게는 종이컵 하나도 아끼라고 하면서 미르, K스포츠재단에는 수십억원을 줬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고 했다. 허씨는 “춥고 지치지만 끝까지 가보려고 매주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모(25·여)씨도 “태블릿PC 사건부터 하루하루 터지는 국정농단에 어이가 없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백모(26·여)씨는 “당신을 뽑은 국민과 촛불을 든 국민은 다르지 않다. 민심을 받아들여라”라고 대통령에게 한 마디를 전했다.

3대가 함께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손영미(38·여)씨는 “딸이 함께 나오자고 해서 어머니, 아버지, 동생 부부, 남편과 함께 나왔다”며 미소를 지었다. 손씨의 딸 차성하(11)양은 “200만에 1명이라도 더 보태고 싶어 부모님을 졸라 나왔다”고 덧붙였다. 손씨는 “둘째 아이가 어려 조금 걱정했지만 평화시위다보니 괜찮은 것 같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하지 않으면 이 집회가 점점 더 커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주언 이가현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