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광장으로 몰린 시민들. 경복궁 너머로 보이는 청와대. 그 사이에 경찰이 있다.
광화문광장 집회 때마다 청와대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장벽처럼 세워진 경찰버스는 시민들에게 불통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지난 26일 밤 광화문광장으로 모인 제5차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이 버스에 저항과 평화의 의미를 동시에 담아 꽃 스티커를 붙였다. 그리고 직접 떼었다.
제5차 촛불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150만명, 경찰 추산 27만명의 시민들이 몰렸다. 많은 인파가 한 곳으로 모였지만 질서정연했고 평화로웠다. 경찰은 “정해진 행진 동선을 지켜 달라”고 안내할 뿐 시민들을 자극하거나 공격적으로 저지하지 않았다. 집회 참가자들은 이런 경찰에 꽃 스티커로 응답했다.
꽃 스티커 캠페인은 화가 이강훈씨가 저항과 평화의 의미를 모두 담아 경찰버스 외벽을 꽃으로 채우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제4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19일 광화문광장에서 처음 등장했다. 예술 클라우드펀딩사 세븐픽쳐스를 통해 제작비가 모아졌고, 광화문광장에서 무료로 배포됐다.
제5차 촛불집회에서는 경찰버스 외벽의 스티커와 낙서를 제거해야 하는 경찰관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잘 떼어지는 꽃 스티커가 배포됐다. 시민들은 꽃 스티커를 경찰버스에 붙이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일부 경찰관들은 시민들의 요청에 사진을 찍어 주면서 질서와 평화에 화답했다.
시민들은 집회를 마치고 경찰버스 주변으로 다시 몰렸다. 스티커를 제거하는 젊은 경찰관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청와대를 바라보고 “박근혜 퇴진”을 외친 시민들, 청와대를 등지고 집회를 통제한 경찰관들이 한데 어울려 웃으며 대화하는 풍경까지 연출됐다.
잘 떼지는 꽃 스티커의 효과를 실감한 듯 작업에 동참한 시민들 사이에서 “잘 떼어진다”는 감탄이 나왔고, 그 옆에서 경찰관은 묵묵하게 미소를 지었다. 한 시민은 “경찰과 시위대를 하나로 묶은 국민대통합이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영상=구성찬 기자, 사진=서영희 이병주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