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 시가, 아디다스 운동복. 26일 타계한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가 애착을 가졌던 세 가지다.
덥수룩한 구레나룻은 카스트로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저항과 반미의 표상이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카스트로의 수염을 없애려는 웃지 못할 계획까지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카스트로가 이런 효과를 노리고 수염을 기른 것은 아니다.
그가 수염을 기른 것은 것은 쿠바의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에서 게릴라 활동을 할 때부터다. 당시 면도기가 없어서 그를 비롯해 게릴라 동지들이 모두 수염을 기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쿠바 혁명에 성공한 뒤에도 그는 수염이 저항과 혁명의 아이콘이 된 것을 알고 깎지 않았다. 실제로 그의 전기를 보면 “수염은 (게릴라 활동하는 동안) 우리의 신분증인 동시에 보호망이었다. 혁명이 성공하면서 우리는 그 상징을 보존하기 위해 수염을 계속 길렀다”고 밝혔다. 그는 “좋은 정부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완수하면 그때 턱수염을 자르겠다”고 했는데, 결국 죽을 때까지 자르지 않았다.
시가 역시 카스트로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15살 때 흡연을 시작한 그는 시가를 물고 살 정도로 골초였다. 젊은 시절 군복 차림으로 입에 시가를 물고 있는 그의 사진은 하나의 상징처럼 유명하다.
하지만 그는 60살 때인 1986년 금연을 선언했다.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의사들이 금연을 권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는 금연을 선언하면서 “국민건강을 위해 내가 해야 할 마지막 희생이 담배를 끊는 것이라고 오래전에 결론을 냈다”고 말했다. 이후 쿠바에서는 금연 열풍이 불기도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는 “시가 박스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적에게 줘 버리는 것”이라며 흡연의 해로움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그가 애착을 가졌던 것 가운데 의외는 아디다스 운동복이다. 1959년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카스트로는 원래 초록색 군복 이외에 다른 복장이 공개된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2006년 장출혈 수술을 받은 뒤 쿠바 당국이 공개한 그의 사진은 흰색 바탕에 빨간색 줄이 그려진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은 모습이었다. 이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프란치스코 교황,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등과 만날 때도 그는 색깔은 조금씩 다르지만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었다. 사실 국가 정상과의 만남에서 이런 운동복을 입는 것은 전례가 없다.
그가 독일 스포츠웨어인 아디다스 운동복을 고집하는 것은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 다만 서양식 의복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데다 소문난 스포츠 애호가인 그가 일상에선 편안한 운동복을 선호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적대적인 미국 브랜드인 나이키는 당연히 밀려날 수 밖에 없고 쿠바 대표팀을 후원하기도 했던 아디다스를 선택하게 됐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