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번진 촛불, 횃불처럼 청와대 ‘넘실’… 서울만 150만명

입력 2016-11-26 21:34 수정 2016-11-26 22:35

촛불은 눈보라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서울에서 올가을 첫눈이 내렸지만 시민들은 변함없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광장으로 나갔다. 그렇게 150만명이 모였다. 누군가가 바람에 꺼질 것이라던 촛불은 횃불처럼 커져 전국으로 번졌다.

 제5차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26일 오후 5시쯤 서울 세종로 사거리에서 네 경로로 갈라져 청와대를 포위하듯 행진했다. 집회 사전행사인 청와대 인간띠잇기 행진이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경찰 저지선에 가로막혔다. 하지만 청와대 진출을 시도하지 않고 촛불을 밝히기 위해 오후 5시40분쯤 광화문광장으로 복귀했다.

 청와대 인간띠를 만든 참가자 중 100여명은 청운효자동주민센터 경찰 저지선 앞에 남아 대치했다. 이때까지 집회 주최 측이 집계한 참가자는 35만명이었다. 오전 중 서울에 관측된 첫눈이 촛불을 끌 것처럼 보였다. 지난 19일 광화문광장으로 모인 제4차 촛불집회 인파는 60만명이었다.




청와대 포위 인간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광화문 인파

 청와대 인간띠를 이룬 참가자 이외의 시민들이 뒤늦게 합류하면서 인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주최 측 추산으로 오후 6시 60만명, 오후 7시 100만명, 오후 8시 130만명, 오후 9시40분 150만명의 인파가 서울의 광장과 거리를 채웠다.

 지난 5일 20만명(경찰 추산 4만3000명), 지난 12일 100만 명(경찰 추산 26만 명), 지난 19일 60만명(경찰 추산 17만명)보다 많은 숫자다. 헌정 사상 한 곳으로 몰린 최다 인파다.

 지난주 대입 수능을 마치고 합류한 고등학교 3학년생들과 함께 이번에는 대학 교수단체에서 처음으로 서울대 교수들이 합류했고, 노동자와 농민들도 전국에서 모였다. 경기도 수원에서 소를 타고 광화문광장으로 입성한 농민도 있었다. 배우 차인표씨도 인파 속에서 발견됐다.

 많은 인파가 모였지만 집회는 질서정연했다. 인파가 휩쓸고 지나간 거리를 자발적으로 청소했고, 폭력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오후 8시부터 1분 동안 일제히 촛불을 끄는 일사분란한 모습을 보였다.



전국으로 횃불처럼 번진 촛불

 광화문광장의 촛불은 횃불처럼 전국으로 번졌다. 오후 9시40 기준 주최 측 추산치로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촛불을 들고 모인 시민은 40만명이다. 그렇게 전국적으로 190만명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다.

 박근혜 대통령의 텃밭인 대구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구 중심가에는 5만명이 모여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초등학교 3학년생이 시민 자유발언을 했고, 한 경북대 재학생은 박근혜 대통령 성대모사로 시민들에게 웃음을 안겼다. 행진을 마치고 자리를 잡은 시민들은 방송인 김제동씨와 함께 만민 공동회를 열었다. 대구 서문시장에서는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가 ‘탄핵 반대’ 집회를 열고 행진을 했지만 촛불집회와 일정이 엇갈려 충돌은 없었다.




 지난주 횃불이 등장했던 민주화의 고향 광주에서는 시민 4만명(경찰 추산 1만5000명)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앞 5·18민주광장에 모였다. 우비를 입고 깔판에 앉은 참석자들은 굵은 빗줄기 속에서 ‘우리가 주인이다’ ‘박근혜 체포’라고 적힌 20여m 길이의 대형 현수막을 펼쳤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에서는 시민들이 오후 4시부터 서면 일대 7곳에서 분산돼 집회를 열었다. 청소년 시국대회에 이어 동보서적 뒤 도로에서 노동당 정당연설회, 촛불서명집회, 민노총 사전집회를 개최했다. 눈 대신 비가 내렸지만 주최 측 추산 5만여명이 모였다.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진다”는 말로 촛불민심에 불을 붙인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지역구 강원도 춘천에서는 김 의원의 사무실 앞으로 시민 1000여명,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지역구인 전남 순천 연향동 국민은행 앞 도로에는 민주노총 회원을 비롯해 시민 2만여명이 모여 촛불을 밝혔다.

 충북 지역 8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박근혜 퇴진 충북비상국민행동을 중심으로 한 시민 1500여명(경찰 추산 700여명)은 청주 성안길에 모였다. 첫눈이 내린 쌀쌀한 날씨에도 “박근혜가 몸통이다” “박근혜는 퇴진하라”고 외쳤다. 참가자들은 1시간 정도 진행한 집회를 마친 뒤 1㎞가 넘는 성안길을 질서정연하게 행진했다.

 학계·종교·정치·교육·농민·언론·여성 등 제주지역 100여개 단체로 구성된 박근혜 정권 퇴진 제주행동(제주행동)의 3000여명은 오후 6시 제주시청 종합민원실 앞 도로로 모여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다.

 전북 전주 충경로에는 7000여명(경찰 추산 3000명), 울산 남구 롯데백화점에는 1주일 전보다 3000여명 늘어난 1만여명의 시민이 모였다.

종합=정지용 손숭미 김철오 천금주 기자
사진=사진부(이동희 최종학 서영희 이병주 김지훈 구성찬 기자)
서울=사회부(김지방 윤성민 김판 임주언 기자)
전국=사회2부(대구 최일영 기자, 광주 장선욱 기자, 부산 윤봉학 기자, 춘천 서승진 기자, 순천 김영균 기자, 청주 홍성헌 기자, 제주 주미령 기자, 울산 조원일 기자, 전주 김용권 기자)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