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작은 은혜를 ‘큰 감동’으로… ‘고래일기’ 박고은씨

입력 2016-11-25 17:24
수족관 안엔 범고래가 있었다. “우와, 크다.” 여자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떠난 가족여행에서 범고래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커서 고래조련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던 소녀는 그때부터 고래를 그리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소녀를 ‘고래’라고 불렀다. 최근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림묵상 ‘고래일기’의 박고은(31·여) 작가 이야기다. 그는 요즘 고래 대신 예수님을 묵상한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다.



굴곡 없는 신앙
할아버지가 목사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결혼했다. 많은 모태신앙인들이 그렇듯, 박 작가도 엄청난 은혜를 체험하거나 특별히 방황한 적 없이 그저 평온한 신앙생활을 했다. 기자가 질문을 하면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특별한 에피소드나 간증거리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드라마틱한 삶을 산 건 아니지만 그만큼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크리스천 청년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며 신앙생활을 했을 터였다.


박 작가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때 예고 입시를 준비하면서부터다. 부산예고에 진학했고 부모님과 같이 살던 경남 창원 집에서 나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할머니는 매일 새벽마다 인근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고 오셨다. 아주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분이었다고 했다. “할머니와 외국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비행기에서 당연히 주는 기내식에도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했던 분이에요. 제가 닮고 싶은 신앙의 롤 모델이죠.”

할머니는 집에서 항상 설교 방송을 틀어놓고 계셨다. 주로 김삼환(명성교회 원로) 목사의 설교를 들었다. 박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대미술과에 진학하면서 서울에 올라왔고 자연스럽게 김 목사가 있는 서울 강동구 구천면로 명성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일상 속 예수님을 그림으로
박 작가는 고등학생 때부터 기도형식으로 일기를 썼다. 예배시간이나 삶에서 마주친 은혜들을 하나님에게 편지 쓰듯 적었다. 이제는 글로 쓰던 일기를 그림으로 기록하고 있다. 일기의 내용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라고 했다. “유기성 목사(성남 선한목자교회)님이 쓰신 ‘영성일기’를 읽어 봤는데 제 일기장이 너무 초라해 보이더라고요. 저는 매일매일 거창하진 않지만 일상 속에서 꾸준히 주시는 은혜들을 그리고 있어요.” 최근엔 그동안 적은 묵상일기를 달력으로 엮은 ‘365캘린더’를 출시했다.

하루는 묵상일기를 기독교포털 갓피플에 올렸는데 반응이 좋았다. 많은 교회에서 박 작가의 그림을 교회 주보에 실었다. 한 선교사는 해외 선교지로 떠나면서 박 작가의 그림이 그려진 엽서를 잔뜩 가져갔다. “그 나라 말에는 ‘예수’라는 단어가 없었대요. 말로는 예수님을 전하기 힘들었지만 그림으로는 현지인들에게 동일한 은혜를 전할 수 있었던 것이죠.”

박 작가는 얼마 전 교회에서 개최한 새가족 초청잔치에 새로 온 사람들을 보며 느낀 점을 그림으로 그렸다. 예수님이 테이블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 그림을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등에 올린 뒤 ‘기다리고 이찌요(있지요)’라는 글과 함께 성경구절을 적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사 30:18)

최근엔 어떤 내용으로 일기를 썼냐고 물었다. “‘365캘린더’를 출시해서 걱정이 많은데 통 기도를 못했어요. 그래서 요즘엔 하나님과 교제하는 데 게을러져서 죄송하다고 일기에 적었어요.”

이용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