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세종대로의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는 23일 오후 촛불이 켜져 있었다. 멀리서 본 초는 커다란 어둠을 인 채 미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촛불 뒤편으로 한 여성이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이날 예배당에서 만난 유상신 사제는 촛불을 켜두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촛불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로 항상 불을 밝힙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1년 365일 항상 켜져 있는 건 아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고난주간 성금요일에는 촛불이 꺼진다. 빛이신 예수가 생명을 잃은 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가 부활한 주일에 다시 불이 밝혀진다. 이 사흘을 제외한 362일동안 매일 24시간 촛불이 켜져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 촛불을 통해 예수의 삶을 묵상할 수 있다. “우리는 빛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빛으로 살아가야 할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처럼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밝혀야 합니다. 촛불을 보면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살아낼 것인가 고민할 수 있습니다.” 유 사제의 말이다. 실제 성공회에서는 기도할 때 각자 촛불을 켜는 경우가 많다. 촛불을 보면서 그리스도의 삶을 묵상하고, 자기 삶에 적용해 보는 것이다.
빛의 속성에서 교회 공동체의 의미와 역할도 찾을 수도 있다. “이 촛불을 한번 보세요. 어둠을 물리치지 않습니까?” 그는 촛불을 가리켰다. “그리스도인 한 명 한 명이 예수님의 빛을 간직한 존재라면 우리가 모인 공동체인 교회는 얼마나 커다란 빛이 되겠습니까?” ‘이 시대 교회가 빛을 발하고 있는가’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혹시 우리 중 한 사람이 죄에 물들어 어둠에 잠식된다 하더라도 다른 빛이 그 어둠을 밝혀줄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잘못을 회개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예수님을 따라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빛의 속성은 그리스도인이 해야할 일에 대한 암시도 준다. “저도 촛불 시위에 나갔습니다. 제가 든 촛불을 보면서 당대의 불의에 저항했던 예수님을 떠올렸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라’(눅 17:21)고 하셨습니다. 아마 예수님도 이 시대, 이곳에 계신다면 촛불을 들지 않았을까요? 그리스도가 빛이라면, 그리스도인은 사회적 불의라는 어둠에 저항해야 합니다.” 마침 주교좌성당은 촛불 시위가 주말마다 열리고 있는 대로 바로 옆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362일 24시간 촛불, 성공회 서울성당
입력 2016-11-26 0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