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아빠다90>위로하고 위로받다.

입력 2016-11-23 15:01
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기자였습니다. 올해 초 3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오랜만에 인영이 외래치료차 서울에 왔다. 인영이는 엄마아빠가 같이있어서인지 기분이 좋았다. 채혈할때 잠깐 울긴 흘리긴 했지만 뽀로로 반창고를 받고 씩 웃었다. 점심을 먹고 교수님께 치료가 잘 진행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들은뒤 아내는 인영이를 데리고 먼저 내려갔다.
병원을 다녀온 인영이가 언니가 입던 발레복을 입고 공연을 한다. 한발로 딛고 선 튼튼한 다리상태에 절로 웃음이 난다.

오후에 같은 병원에 입원해있는 회사 선배 병실을 찾았다. 일주일전 건강하던 선배가 림프암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꼭 한번 찾아뵈야겠다 생각했다. 형수님과 함께 있는 선배는 오늘부터 항암치료를 시작했다고 했다. 조금 야위어보이는 선배 손을 입사이래 처음으로 잡았다. 네살 인영이도 이 병원에서 항암 10개월째 받고있는데 어느새 보통 아이처럼 건강해졌다고 선배도 곧 좋아지실거라고 마음을 건넸다. 처음 뵌 형수님은 해외여행간셈 치고 1인실에서 오랜만에 푹 쉰다고 생각한다고 웃으며 말하셨다. 처음 응급실에서 침대도 없이 대기했던 공통의 경험과, 그때가 바닥이고 점차 나아졌다는 얘기에 형수님 얼굴이 조금이나마 밝아져보여 기뻤다.

저녁에는 고등학교 선후배들을 만났다. 세종시 내려간 이래 이런저런 이유로 한번도 동문회를 못나갔으니 근 5년만이었다. 20년전 철없던 대학시절 이야기에 시간가는줄 몰랐다. 먼저 일어나야겠다 하니 모두 일어서 마음을 전했다. 나는 그렇다치고 가잠 힘든건 엄마니 아내한테 배달사고 없이 잘 전달하라고 수표가 든 편지를 손에 쥐어줬다. 까마득한 십년 후배부터 김영란법에 저촉되는지 알아봤다는 동기까지.. 그 마음에 지난 10개월의 암담했던 날들이 까맣게 잊혀지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을 받는 그 한 장면으로 우리는 힘을 얻고 살아간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사람들 사이에는 분명 섬이 있고, 우리는 펑생 그 섬들을 밟으려고 살고있다. 아련히 밟은것 같았던 그 섬들이 눈앞에 쫙 펼쳐질 때, '그래 사는건 이런거였지' 란 생각이 들 때, 실없는 농담사이에 그윽한 눈빛이 느껴질 때. 우리는 그 '한 때'로 인해 삶의 용기와 희망을 가질수 있다.
진부하지만, 사람만이 희망같다. 아니 희망이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