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이 군사비밀을 직접 공유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을 담은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이 23일 지난 4년 간의 우여곡절을 뒤로한 채 결국 체결됐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는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한일 GSOMIA에 최종 서명했다.
한일 GSOMIA는 1989년 한국의 필요에 의해 먼저 거론되기 시작했다. 정보자산이 크게 부족했던 한국은 일본에 계속 요구해왔지만 일본은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이후 동북아 지역 안보환경에 변화가 생겼고 일본이 한일 GSOMIA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06년과 2009년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도발이 거듭된 것이 배경이 됐다.
한일 GSOMIA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당시는 위안부 합의, 독도 영유권 문제로 한일 관계가 극도로 안 좋았던 터라 공개적으로 협상에 나서기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다.
때문에 비밀리에 협상을 추진했고 2012년 4월23일 국무회의 비공개 안건으로 한일 GSOMIA를 처리하려다가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며 협정 체결 1시간 전에 갑작스럽게 취소됐다. 일본 각의에서는 협정안이 통과된 상태로 외교부의 공식 서명 절차만 남겨둔 시점이었다. 그 이후 한일 GSOMIA 논의는 중단됐었다.
변화의 기류가 감지된 것은 그로부터 2년 뒤인 2014년 4월부터였다. 국방부는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이후 한·미·일 3국 간의 정보공유 필요성을 인식하고 정보공유 양해각서(MOU) 체결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그해 12월 약정을 체결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훈풍이 불기시작했다. 2011년 중단됐던 한일 양국 국방장관 회담이 재개(5월30일)됐고, 양국 장관은 군사협력 교류를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하면서 GSOMIA 체결을 위한 사전분위기가 조성됐다.
하지만 국방부는 여전히 한일 GSOMIA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견지했다. 올해들어 일본에서 꾸준히 GSOMIA 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한민구 장관은 필요성은 공감하면서도 "여건 성숙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내세워 왔다.
분위기가 갑자기 바뀐 것은 지난 10월19일 미국 워싱턴에서 제48차 한·미안보협의회(SCM) 뒤부터였다. 한일 정부는 SCM 뒤 8일만인 지난달 27일 중단됐던 일본과의 GSOMIA를 위한 논의를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국방부는 한일 GSOMIA 추진배경에 미국의 영향력이 있었다는 의혹에 공식 부인하고 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논의가 재개되면서부터는 협상이 급물살을 탔다. 1차 실무자 협의(11월1일·도쿄)와 2차 실무자 협의(11월9일·서울)를 거쳐 3차 실무자 협의(11월14일·도쿄)까지 보름만에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협상을 벌인 끝에 협정문 가서명까지 이뤄졌다.
차관회의(17일)와 국무회의(22일) 의결을 거쳐 박근혜 대통령 재가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하루 뒤인 이날 최종서명에 이르렀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