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절망한 대학생이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 네티즌들을 울리고 있다.
지난 15일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에 익명의 글이 게재됐다. 이 글을 본 네티즌들은 이 청년의 절망에 공감하며 3900여명의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렀고 500번 이상 공유됐다.
글쓴이는 아버지가 작은 실수로 회사를 그만 두게 되면서 안 그래도 넉넉하지 않았던 가정 형편이 내리막으로 굴렀다며 글을 시작했다. 이후 아버지는 죄책감에 젖어 술을 마셨고, 어머니는 쉰이 넘은 나이에 일을 시작했는데 그날 이후로 엄마가 웃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급류 같은 집안 분위기에 글쓴이의 남동생은 엇나가기 시작했다. 남동생에게 "공부하라"며 타일러도 봤지만 "공부 한다고 돈 잘 버는 것도 아니잖아"라고 말하며 집을 나가는 동생을 붙잡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자살을 생각했던 글쓴이는 "그래도 희망을 꿈꿨었다"고 말했다. 그는 "천 원짜리 삼각 김밥 하나를 뱃속에서 불려 하루를 버틸 때도, 수업 중에 배가 고파 꼬르륵 소리가 난 순간 내가 아닌 척 시치미를 떼지만 창피해 죽고 싶을 때도, 동기들이 술을 먹으러 가던 순간 통학을 핑계로 은근슬쩍 빠져나오던 때도 취업만 하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최순실 사태’를 보며 또다시 절망했다. 글쓴이는 "오늘 모든 게 와르르 무너졌다. 사실은 그전부터 그랬다. 돈도 실력이라는 여자가 태연하게 파티를 열고 비싼 음식을 처먹던 순간에도 나는 삼각 김밥 하나를 물 두 병과 곁들여 착실히 배에서 불리고 있었다"며 "또 그 누군가가 그 여자를 아직 풍파를 견딜 나이가 아니라고 감싸안아주던 순간 나는 한번 먹고 살아만 보겠다고 미친 듯이 허벅지에 피멍을 내가며 밤새 공부하고 있었다"며 한탄했다.
이어 그는 술을 안 드시고 일자리를 뒤적이시던 아버지가 농담조로 그래도 국민 연금은 나올 거야, 하시며 슬쩍 웃으시는게 유일한 웃음이었던걸 그 개자식들은 알까. 그리고 사실은 진짜로, 그거나마 내 미약한 희망이었던걸 그 개새끼들은 알까. 모든 희망은 소멸된다. 타오르는 촛불보다 못한 인생이고 희망이었다"며 절망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이후 글쓴이는 뉴스를 보던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봤다고 전했다. 그는 “뉴스를 보시던 아버지가 우셨다. 그건 아마 나라에 대한 답답함이자 정말 벼랑 끝으로 간 우리 집에 대한 비통함이었을 거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글쓴이는 “나는 안 울었다. 돈이 없어서 이민은커녕 오늘 밥 한 끼도 못 먹고, 고상한 자살 방법도 모른 채 그냥 제일 값싼 방법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삼각 김밥을 먹었다. 도시락 폭탄이나 만들까 싶다. 나 죽고 개자식들 다 죽고 이 땅의 온갖 잡쓰레기들을 다 떠안고 뒤지고 싶다. 삼각 김밥을 다 먹고 나서야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함께 내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며 끝을 맺었다.
이 글을 본 네티즌들은 이 청년 절망에 공감했다. 네티즌들은 “우리세대는 다음세대에게 헬조선을 극복해낸 세대로 기억될 수 있게 힘내보자”거나 “정말 손이라도 꼭 잡아주고 싶다. 힘내라”며 함께 슬퍼했다.
한 네티즌은 “많은 사람들이 억울해도 ‘사는 게 다 그런가보다..."하고 체념하고 살았지만 이제야 비로소 이 세상이 다 뜯어 고쳐야 할 정도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처음으로 힘을 합쳐 온힘을 다해 세상을 바로잡으려고 하고 있다”며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지만 포기만 하지 않으면 '실패'라고 결론 낼 수 없지 않을까요? 부디 이 시작점에서 끝내지 말아 달라“고 응원이 글을 남겼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