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날이다.
오전 7시10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고등학교 앞은 벌써 시끌시끌하다. 교문 양옆으로 응원 나온 고등학생들이 목에 핏대 세우면서 “파이팅!!!”이라고 외치고 있다. ‘열공한 당신 수능대박' ‘우리는 전설이 될 것이다’ 등 피켓이 보인다.
문일고, 선유고 등에서 20여명의 학생들이 선배들을 응원하러 나와 요란한 소리로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수험생들 지나갈 때마다 자기 학교 선배가 아니라도 큰 소리로 기운을 북돋는다.
문일고 학생회 학생 8명은 선배들에게 초콜릿과 사탕 꾸러미를 주면서 “잘보라”고 힘을 보탰다. 호랑이 탈을 쓰고 응원하고 있는 이는 이 학교 총학생회장 유시원(17)군. 그는 “호랑이 기운을 받으라고 호랑이 탈을 선택했다”고 포효했다. 선유고에서는 선생님들이 학생 응원을 와서 등을 토닥이며 따스한 정을 불어넣었다.
한 여학생이 종종걸음으로 교문에 들어서다 갑자기 돌아서 나갔다. 여의도고에서는 남학생들만 시험을 치른다. 한가득 먹을 것이 든 종이가방을 들고 들어가는 수험생도 보인다. 응시생들은 후배들의 활기찬 응원을 받으면서도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좀처럼 표정을 펴지 못한다.
서울 신길동 장훈고의 노경천(16)군은 오전6시부터 응원을 나왔다고 한다. 그는 “2년 뒤에는 나도 수능을 볼텐데 분위기가 어떤지 보고 싶었다”고 했다. 사촌동생 응원을 왔다는 이승희(29‧여)씨는 아직 동생을 만나지 못했는데 출근시간이 다가와서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저녁에 가족모임에서 동생을 봐야겠다”며 아쉬워했다.
이모(47)씨는 이미 학교 안으로 들어간 아들을 향해 발을 동동 굴렀다. “아들이 차에서 도시락을 깜빡하고 갖고 내리지 않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시험장으로 들어간 아들과 휴대전화 연락도 안 된다”고 말했다.
담요와 손난로를 준비하고 나눠주는 이들도 있었다. 한우농가의 재원으로 운영되는 한우자조금에서 나온 이들이다. 이벤트를 담당하는 박종선 홍보대행사 비알컴 대표는 “오후에는 한우 버거를 나눠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오전 8시가 되기도 전에 응원하는 학생들이 준비한 응원 물품도 동이 났다. 준비해온 손난로, 초콜릿 등이 들어있던 박스가 텅텅 비었다.
고수경(61·여)씨는 이번에 재수하는 아들을 데려다주고 교문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아들이 늦둥이라 더 걱정이 많은데 이번에 재수를 해서 스트레스를 더 받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잘 쳐야 할텐데”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핸드백에서 스프레이를 꺼내더니 “천주교 신자라 성수를 뿌려야겠다”며 교문앞에서 세 번 정도 스프레이 뿌리더니 돌아서서 갔다.
조희연 교육감이 오전 7시55분쯤 깜짝 등장했다. 그는 “학생들이 그동안 공부했던 것을 부담 없이 발휘하기를 바란다”며 “긴장하지 말고 파이팅”이라며 응원 온 학생들과 사진도 찍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민미화(48·여)씨는 아들이 이미 학교 안으로 들어갔지만 시험이 시작되는 8시30분까지 있다 갈 거라며 교문앞을 지켰다. 그는 “어제 아들도 나도 잠을 잘 못 잤다”며 “아들이 공부에 욕심이 많은데 잘 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날 저녁부터 아들이 좋아하는 닭찜을 도시락으로 준비했는데 먹으면서 부모의 정을 느끼고 시험도 힘을 내서 잘 보길 바란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저녁에는 그동안 고생한 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갈 거라고도 했다.
응시장 입실 완료가 2분 남짓 남은 오전 8시8분에는 순찰차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달려왔다. 한 남학생이 허둥지둥 내렸다. 교문 앞에 몰려든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차에서 내려서는 의외로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교문을 걸어 들어갔다.
시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