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라임 동경한 박근혜 대통령, 정작 하지원은 블랙리스트

입력 2016-11-16 16:42 수정 2016-11-16 17:06
하지원이 연기한 길라임(왼쪽)과 박근혜 대통령. 사진=SBS 드라마 ‘시크릿가든’ 화면촬영, 국민일보 DB

박근혜 대통령은 길라임에게 자신을 투사했지만, 정작 길라임을 연기한 배우 하지원은 이 정권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9473명의 문화예술계 인사 중 하나다. 하지원은 제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의 경쟁자였던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 문재인 전 의원을 지지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때때로 현실은 이렇게 드라마보다 잔혹하다.

 SBS가 주말드라마 ‘시크릿가든’ 첫 회를 방송한 시점은 2010년 11월 13일이다. 종영할 때까지 평균 시청률 30%대를 기록한 인기 드라마였다.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에서도 큰 호응을 얻어 주인공 하지원과 현빈을 한류스타로 다시 올려 세웠다. 2011년 1월 6일 종영한 20부작이다.

 하지원은 역경을 극복하고 삶을 개척하는 스턴트우먼 길라임을 연기했다. 길라임의 상대역은 조금 삐뚤어진 성격에 얼굴은 잘생겼고 무엇보다 백만장자인 남주인공 김주원이다. 김주원 역은 현빈이 맡았다. 커피크림이 뭍은 하지원의 입술에 현빈이 입맞춤하는 ‘거품키스’ 장면은 지금까지 강한 인상을 남긴 명장면이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이 드라마의 애청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종합편성채널 JTBC는 지난 15일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유력 대선주자였던 2011년 병원 차움의 VIP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길라임을 가명으로 사용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보도했다. 차움의 전직 관계자는 이 방송과의 익명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운동을 기록하면서 본명을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고 한다. 무엇으로 할까 하다가 길라임으로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JTBC가 정황을 포착한 박근혜 대통령의 차움 VIP 서비스 이용 시기는 이 드라마의 대중적 열기가 남았을 때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크릿가든의 애청자였는지, 실명을 공개하기 싫은 문서에 가명으로 사용할 정도로 길라임을 동경했는지, 그 순간 우연히 떠올린 이름이 길라임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길라임을 가명으로 사용했다는 증언만 남았을 뿐이다.

 길라임을 연기한 하지원은 정작 박근혜 대통령보다 문재인 전 의원의 지지자였다. 누구든 정치적 신념을 가질 수 있지만 하지원은 결국 이 선택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악연을 쌓고 말았다. 청와대가 지난해 문화예술계에서 검열할 9473명의 명단을 작성해 문화체육관광부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문건엔 하지원의 이름이 들어갔다.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에 서명한 594명,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한 754명, 박원순 시장의 2014년 지방선거 후보 시절 지지를 선언한 1608명과 함께 문재인 전 의원의 대선 후보 시절 지지한 6517명 중 하나가 바로 하지원이었다.

 이 황당한 이야기의 본질은 박근혜 대통령의 당시 VIP 서비스 무료 이용 의혹이다. JTBC는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 차움의 VIP 시설을 무료로 이용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차움의 VIP 회원권은 1억5000만원 이상”이라고 전했다. 박 대통령이 이 병원의 VIP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한 것으로 확인될 경우 뇌물죄가 적용될 수 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