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의 패배를 계기로 미국에서 선거인단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16년만에 또다시 높아지고 있다.
클린턴은 지난 8일 치러진 대선투표에서 전국 유권자들로부터 더 많은 표를 얻고도 도널드 트럼프에 패배했다. 10일 현재(현지시간) 개표 결과에서 클린턴은 47.7%를 득표해 47.5%를 득표한 트럼프보다 0.2%포인트 앞섰다. 득표 수로는 약 28만 표가 더 많다. 하지만 주별 승자가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미국 특유의 선거인단 제도로 인해 클린턴은 228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반면, 트럼프는 과반(270명)이 넘는 279명의 선거인을 차지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CBS 뉴스는 지난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앨 고어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보다 많은 표를 얻고도 패배한 이후 또다시 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230여년동안 이어온 선거인단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CBS 뉴스에 따르면, 이번 선거 결과에 실망한 클린턴 지지자들이 소셜미디어 상에서 선거인단 제도의 폐지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으며, 온라인상 일각에서는 청원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클린턴 선거운동본부 측 관계자들도 관련 메시지를 트윗하는 등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진보적 성향의 청원운동사이트 무브온( MoveOn.org)에는 실제로 선거인단 제도 청원서가 게재됐다.
트럼프 당선인 자신도 과거에 선거인단 제도에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낸 적이 있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됐을 당시 그는 소셜미디어에 "가짜 선거인단제도가 우리 나라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그(오바마)는 (밋 롬니 공화당 후보에 비해) 훨씬 적은 표를 얻고도 당선됐다. 우리는 이 나라에서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바마 경우는 사실이 아니다. 오바마는 2008년과 2012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보다 각각 수백만 표를 더 얻어 당선됐다.
선거인단 제도는 미국 건국 초기부터 시행돼온 제도이다. 선거인단의 수는 538명으로, 이는 미국 하원(435명)과 미국 상원(100명)의 숫자를 합친 535명에 워싱턴 DC의 선거인단 3명을 합친 것이다. 미국 헌법 2조 1항 2절은 선거인단의 숫자와 선출 방식을 기술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메인주와 네브라스카 주를 제외하고 대통령 선거에서 각주 승자가 해당 주의 선거인단 전체를 차지한다. 이는 연방제도에 따라, 각 주가 하나의 국가와 다름없다는 정신에 기초한 것이다.
지난 2000년 앨 고어가 패배하기 전까지, 미국 대선에서 양당체제 성립 이후 더 많은 표를 얻고도 패배한 후보가 나온 경우는 딱 2차례 뿐이었다. 게다가 모두 19세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선거인단 제도를 폐지 또는 수정하려면 헌법을 바꿔야 하는데,우선 개헌안이 상하원에서 3분의 2 지지를 얻어야 하고, 전국 50개 주 중 최소 38개 주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1969년에 대통령과 부통령 직선제 도입 결의안이 하원을 통과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상원 통과에는 실패한 적이 있다. 그나마도 정식 법안은 아니었다.
CBS 뉴스에 따르면 선거인단제도를 기술적으로 폐지하지는 않으면서도 득표 수를 반영해 대선 승자를 정하자는 움직임은 지난 10여년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50개 주 중 10개주 의회와 워싱턴 DC가 관련 법안을 통과시킨 상태이다. 문제는 대부분 민주당 성향 주들이고, 대선 결과를 좌우할 수있는 '경합주'들은 아니라는 점이다. 해당 주의 선거인단 수는 165명이다.
선거인단제도 개혁을 주장하는 '페어보트(FairVote)'의 책임자인 롭 리치는 CBS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020년 또는 2024년에 관련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역설했다. 이 사이트에 따르면, 공화당의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도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는 것. 물론 트럼프 내각에 입각할 가능성도 있는 깅리치가 현재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는 미지수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효과적 공공 매니지먼트 센터'의 존 후덕 부소장은 현행 제도를 바꾸기는 '매우 어렵'겠지만 만약 2000년과 2016년 대선 때와 같은 상황이 앞으로의 대선들에서 또다시 재연되면 개혁 움직임이 보다 힘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보수성향 헤리티지 재단의 한스 A 폰 스파코브스키 수석연구원은 "지난 200여년에 걸쳐 선거인단제도를 개혁하려는 관련 시도가 수십차례 있었지만 지금까지 현실화된 적은 없다"며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