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이래 우리나라의 정신문화를 이끌었던 지주는 유교사상이었다. 부모를 공경하고 스승을 존경하며 노인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때의 정신문화는 사라졌다. 식민지 시대 독립운동의 원동력이었던 기독교정신도 자리를 잡는 듯 했지만 사그라져 버렸다.
지금은 우리민족의 정체성과 정신문화가 무엇인지 말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확실한 것은 황금만능주의와 이기주의가 우리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멘토가 없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귀중한 멘토였다. 학생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사람은 담임 선생님과, 매주 훈화를 하던 교장 선생님이었다. 그 때의 많은 선생님은 ‘스승’으로서 역할을 했고, 인격적으로 존경을 받았다.
가난하던 시절에 자신의 도시락을 나눠주고 제자들이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을 깨달은 학생들은, 성장하여 사람들을 돕는 사회의 멘토가 되었다. 그래서 선생님을 우리는 스승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스승’의 칭호가 ‘교사’로 불리면서, 선생님들은 스승의 의미가 지워진 ‘노동자’로 전락하게 된다. 이에 스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적어지고, 선생님을 스승으로 인정하고 따르는 학생도 적어진 세상이 되었다. 학생들의 인권이 커지고 있지만, 동시에 멘토도 사라지고 있다. 교사를 ‘스승’으로 존경하고, 교사의 ‘멘토’ 역할을 부활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가정의 멘토는 부모님이었고, 그 다음이 맏이였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황정민이 보여주었던 장남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자신은 배우지 못하고 못 먹더라도 책임지고 동생을 공부시켰고, 가정의 생계를 위해 일생을 헌신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장남과 장녀들은 우리사회 또 하나의 멘토였다.
기업에서도 멘토를 찾을 수 있다. 현대의 정주영, 삼성의 이병철 회장은 국가를 생각하면서 기업을 만들었고 일자리를 창출했다. 국가의 발전이 자신의 기쁨이라 여기던 시절, 기업은 시련은 있지만 실패는 없다는 기업정신으로 맨바닥에서 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기업을 세워 도전하는 정신을 찾기 어렵다. 새로운 기업을 만들면 처음 몇 년 동안은 적자를 보기 마련이다. 그러나 모기업에서 지원을 해줄 경우 배임과 횡령이라는 올가미에 걸릴 수 있다. 잘 나가던 기업도 이익이 나지 않으면 폐업하는 현실 속에서, 이제 도전정신으로 기업을 키웠던 멘토들은 전설 속의 이야기가 되었다.
앞으로는 과연 누가 멘토가 되어야할까? 예전 목사님들은 가난과 싸우고 기도하며 교인을 양육했다. 교인들도 목회자를 사랑했고 존경했다. 그러나 요즘은 존경받는 목회자를 천거하기 힘들어졌다. 불교도 매한가지라고 한다.
지금 세대의 멘토는 스마트폰이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스마트폰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 스마트폰으로 방대한 지식을 얻을 수는 있지만, 지혜를 얻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를 옳은 길로 인도해줄 수 있을까.
대통령일까, 아니면 정치인일까? 누구도 길을 제시해주는 사람이 없다.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믿고 따를 수 있는 스승이 없고, 그 누구도 멘토라고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를 보면서 걱정스러울 때가 많다.
스승과 멘토가 없는 사회에서 앞으로의 길은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의 길은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성경, 성경은 바로 하나님 그 자체다. 성경 속에서 길을 찾고 정체성을 세워야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이를 자식들에게 교육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아버지가 멘토가 되어 성경을 자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다음 세대를 올바르게 세우는 일이다.
다음 세대는 가정으로부터 바로 서야 한다. 학교도, 교회도, 학원도 그 기능을 맡기에는 부족하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우리 사회와 가정, 회사의 멘토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의 진정한 멘토는 주 예수그리스도임을 고백하자.
<한국유나이트문화재단 이사장, 갈렙바이블아카데미 이사장>
[강덕영 칼럼]멘토
입력 2016-11-10 13:48